애나 위너, 언캐니 밸리

stri.destride 2022. 1. 23. 22:10

그러나 그들의 유토피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친구들 말로는 그곳이 언제부턴가 후기 자본주의가 판치는 소굴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집값이 말도 안 되게 치솟았다. 갤러리와 공연장이 문을 닫았다 (...) 데이트 웹사이트에는 시답잖은 남자들이 줄을 섰다. 좋아하는 책 목록에 경영 교과서 이름을 진지하게 써 넣고, 데이트 장소에 자기 회사 로고가 박힌 배낭을 메고 오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CEO들은 비슷한 부류를 만나 재미를 볼 작정으로 섹스 파티를 기웃거렸다. 바짝이를 뒤집어쓰고 팬티만 한 바지 차림으로 엑스터시를 찾던 내 친구들은 언젠가부터 퀴어 퍼레이드에 나가면 특정 브랜드 이름이 사방에 둘린, 누구에게나 위화감 없도록 꾸며진 원색의 행진 차량을 목격했다. 그 브랜드의 마케팅 책임자가 이성애자인 것마은 분명했다. 41

 

그 순간의 나는 여자 임원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그에게, 그러면 여자를 더 많이 고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대꾸하지 못했다. 여자를 더 많이 고용한들 여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내 문화가 여전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점을 지적하지도 못했다. 그 대신에 나는뭐든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93

 

몇 년 간 우리 회사가 밀었던 홍보 문구는 '엄마도 쓸 수 있을 만큼 쉬운 제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례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뒤로는 여자 직원이 없는 회의에서 남자들끼리만 쓰는 표현이 됐다. 그리고 그러한 회의는 숱하게 열렸다. 102

 

나는 속으로 질색하며 뒷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겠다고 낯선 사람들과 질문을 주고받는다니, 생각만으로 스트레스였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ㅜ모님과의 관계를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따. 나 혼자자의식 과잉에 보수적이고 꽉 막힌사람이된 것도 같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이안이 맥주 캔을 두 개 집어든 뒤 거실로 나가자고 고개를 까딱했다.145

우리는 지금보다 더 안정적이고 덜 불안해하는 사람, 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힘이 있는 사람이 되길 기대했었다. 165

 

내게 섹슈얼 파워가 있다 한들 나는 그 힘을 사무실에서 내보일 생각이 없었다. 나는 다른 남자들처럼 되고 싶을 뿐이었따. 사소한 에외가 있기는 했따. 회식 떄 분위기가 한창무르익으면 남자인 고객사 관리 직원이 어김없이 내게 자기 뺨을 때려달라고 청했따. 그에게는 그 행위가 일종의 성적 쾌락을 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아무래야 좋았다. 그 행위가 내게 주는 카타르시스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팀 남자들이 나를 똑똑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그들이 내 알몸을 상상하는 것은 곧 죽어도 싫었다. 나는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었다. 남자들에게 이성으로 인정받기보다 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멀쩡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169

구인 공고문은 각 회사 인사팀이 생각하는 오락거리와 스물세 살 직원들이 짜낸 워라밸 아이디어를 실컷 구경할 수 있는 장이었다. 어떤 때는 여름 캠프 공고를 보는 것만 같았다. 211

 

적나라한 형광등이 비추는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의 검소하고 휑한 사무실이라든가 창고를 개조한 이안네 회사의 쿨하고 싴한 사무실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 회사의 사무실은 확실히 독특했다. 그것은 달뜬 열망이고, 환상이자, 놀이터였다. 다소 과한 정도를 넘어, 남사스럽고 경박한 분위기를 풍겼다. 1차 면접을 위해 백악관 상황실을 빼다 박은 유리 회의실에 들어가자 테이블 양옆으로 '우리는 능력주의를 믿는다'고 쓰인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웃음이 터지고말았다. 218

체게를 누구보다 중시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뿐 아니라 시내의 고급 카페에서 효율적인 작업 방식과 약 복용법에 대한 조언을 공유했다.사람들은 붉은 색 조명과 수면 유도 음악을 이용해수면 사이클을 최적화했다. 버터를 넣은 콜드브루를 마시고, 허벅지에 주사기로 남성 호르몬을 투여하고, 150볼트의 전기 충격을 가하는 손목 밴드를 차고 다니면서 자기관리를 멈추지 않았다. 

바이오해커들은 인간의 몸 또한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노트북 운영 체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따면 아무 고민 없이 업그레이드를 선택하지 않겠느냐면서,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 데 목말라 있는사람들을 겨냥한 신생 회사들이,인지 능력을 강화해 고차원적 사고를 하게 해 준다는 무허가 향정신제를 팔았다. 240

 

바이오해킹은 마치 경영 블로그를 관리하는 것처럼 또 다른 형태의 자기계발이었다. 테크 업계의 문화는 몸 관리와 같이 주로 여성에게만 요구 되던 행동을 남성도 똑같이 하도록 끊임없이 기회와 분위기를 조성했다. 개인의 활동 지표를 추적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나아지고 있고 빨라지고 있다는 감각을 부여했다. 성과 순위표와 피트니스 앱은 사람들의 경쟁심을 부추겼다. 수량화는 통제 수단이 되었다.241

 

여자 직원들은 사내 문제가 일부나마 세상에 까발려진 걸 대체로 반기는 눈치였다. 회사에는, 비유적으로든 문자 그대로든, 입으로 똥을 싸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차별에 관해 일말의 고민도 없는 사람들 역시 태반이었다. 백인 남성 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고 엔지니어링 팀의 여성 직원이 열다섯 명도 채 안되는 이 전도 유망한 회사에는, 능력주의에 대한 집착이 짙게 깔려 있었다. (..) "평등하되 급여와 권한은 다르다 이겆." 내부 툴 개발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 회사에선 여자로 사느니 털복숭이 동물로 사는 게 더 쉬울걸요." "무구조의 횡포를 읽어 본 사람이 있ㅎ기는 할까요" 253

 

"그런 거 있잖아요. 스마트 브라, 테크 주얼리 같은 거. 남자들은 여자들이 그런 종류의 하드웨어에만 관심을 가질 거라 생각하죠." 258-9

 

하지만, 교차성의 관점에서 권력을 바라보는 것이 뉴 노멀이자 도덕적으로 올바른 입장이라는 얘기를 아주 낯설게 받아들이는 소수의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면 회사의 수준이 낮아지는 것 아니냐며 의아해했다. 단지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경험과 사상읟 ㅏ양성도 함께 존중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테크 업계에 이미 아시아인과 미국게 아시아인이 충분하지 않으냐고, 그들이 고위직에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큼 있다는 것이 의미 있지 않느냐고 했다. 또 그들은 파이프라인 문제를 부정했다. 타고난 자질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테크 업계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금융 쪽이나 다른 업ㄱ례보다는 개방적이지 않느냐고 했다. 그들의 비판 논리에는 능력주의가 내면화되어 있었다. 컨설턴트는 자신을 은근히 깔보는 그들의 맬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다.

"능력주의". 사회풍자의목적으로 만들었으나 그 풍자의 대상인 업계가 누구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인 단어였다. 재미 삼아 직원과 입사 자원자들에게 아이큐 테스트를 보게 하는 회사들과, 씨이오 유형의 남자들로 가득찬 스타트업들과, 벤처 캐피탈의 96%가 남자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눈 하나 깜짝 않는 투자자들과, 자산이 주식에 묶여 있으니 자신을 여전히 언더독이라고 여기는 억만장자들이 떠받드는 신념이기도 했다. 

경제가 불안정한 이 시대에 금융위기와 함께 어른읻 ㅚㄴ 세대가 능력주의에 열광하는 이유를 나는 알 것도 같았다. 누구도 미래를 보장받지 못했다. 하지만 잔해를 딛고 살아남은 듯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강압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업계에서 자리를 확보한 그 사람들에게 능력주의 서사는 구조적 분석의 공백을 메울 수 있게 해 주었다. 능력주의는 모든 것을 말끔하게 정리해주었다. 262-3

캐주얼한 나체주의, 유쾌한 난교, 공동 거주, 공동 식사, 공동 목욕까지, 모든 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 히피족에서 영감을 얻은 듯 보였다. 사람들은 멘도시노 땅을 공동으로 사들이자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자녀를 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공동육아를 계획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불안전한 과거를 재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유와 순수한 기쁨을 추구하던 과거를. 

나는 1960년대식 대항문화를 적극 실천할 생각은 그다지 없었으나, 그 문화의 끈질긴 생명력에는 관심이 갔다.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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