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트 폰 욀하펜,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stri.destride 2021. 8. 23. 12:22

 

히틀러 시대의 '레벤스보른 프로젝트'에 대한 책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쓰면서 나는 나치 철학의 끔찍한 본질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터무니없는'이나 '기괴한'같은 단어를 끌어다 쓰기는 쉽다. 하지만 그런 상투적 표현ㅇㅡㄹ 넘어 그 끔찍함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말로는 그 끔찍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히틀러의 제국에서 자란 나는 나치의 인종에 대한 집착이 세계대전과 절멸수용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역사를 피해갈 수는 없다. 내 과거는 힘러의 친위대와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인종에 대한 그들의 일그러진 집착 어딘가에 레벤스보른에 대한 진실과 내 태생을 알려줄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125

ㅇㅣ런 부역의 유산은 오래도록 씁쓸하게 남았다. 독일 곳곳의 레벤스보른 시설 직원들이 다급하게 자료를 폐기한 것과 달리, 노르웨이에서 친위대는 문서를 파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전쟁 후 레벤스보른 산모와 아이 수천 명의 신원이 드러났고 동포들의 분노를 샀다. 이 여성과 아이들은 이웃과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경찰은 독일 병사와 관계한 여성 3000-5000명을 체포해 강제수용소까지 행진하게 했다. 노르웨이 최대의 정신병원장은 독일인과 관계한 여성들은 '정신적 하자가 있는 자들'이며, 그들의 자녀 가운데 80퍼센트가 발달 지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154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나거나 납치된 아이들의 전체 수에 비하면 매우 소수여ㅆ다. 그리고 벌써부터 의견차이가 드러났다. 몇명 사람은 환한 곳으로 나가야 한다고, 기자회견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오래된 레벤스보른 보육원이 있던 베로니겔ㅗ뎅ㅔ 기념비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길 바랐다. 나는 앞으로의 나날들이 쉽지 않으리라 직감했다.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