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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 조은

내가 이 가족을 통해 빈곤 재생산을 연구한다고 말한 적이 없음에도 이 가족중에서 학력이 가장 낮은 덕주 씨는 인터뷰때마다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단어들을 골라내고는 한다. 스무 살때도 자기 집의 가난에 대해 '돌고 돌고 또 돌고'라고 말했었다. p12 이러한 언어의 계급적 차이는 연구 논문을 쓸 때에는 내용을 적당히 요약해서 쓰고 직접 인용하기보다는 풀어 써서 그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다큐 편집 과정에서 이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단적인 예가 그들의 '말'을 잘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긴 인터뷰나 생애사를 화면에 잡았을때 계층이 다른 청중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략) 많은 시간을 들여 독해를 했는데도 오독이 여러 군데 있었다. (중략) 이는 단순히 오청의 문제라기보다 삶의 경험의 ..

2012.08.10

눈, 오르한 파묵

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터키에서 신을 믿는 다는 것은, 가장 숭고한 사고 가장 위대한 창조자와 홀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 어떤 단체에 들어가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무흐타르는 신에 대해, 개인의 믿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종교 집단의 유용성에 대해 언급할 뿐이었다. 그것이 실망스러웠고, 그렇기 때문에 무흐타르를 높이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하지만 무흐타르, 내가 신을 믿기 시작하면 너는 나에게 더욱 더 실망하고 날 경멸할거라는 생각이 든다.""왜?""서구화되고, 외롭고, 홀로 신을 믿는 개인은 널 두렵게 하지. 넌, 어떤 집단에 속한 무신론자를 홀로 신을 믿는 개인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외로운 사람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보다 가련하고 비참한 존..

2012.08.03

'맛집 블로거' 단상

맛집 블로거의 포스트를 보다보면 필자가'맛'을 이야기하고싶은건지 '인테리어'를 이야기하고싶은건지 아니면 그냥 '저 여기 유명하다고 해서 다녀왔어여~'인지 가끔 당황스러울때가 있다. 메뉴판, 예쁘게 나온 음식 사진, 인테리어 사진, 화장실 사진(도 간혹 있다) 이런 식으로 사진은 엄청 많은데, 음식에 대한 설명은 대개 '제가 시킨 메뉴는 이거였는데요 양념이 잘 배어들어 있고 육질이 매우 부드러워요' 이런 식의 간단하고 간단한 설명들. 도대체 양념이 '잘'배어든게 어떻게 배어든건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육질이 부드럽다는게 어떻게 부드럽다는건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전반적으로 단맛-이라고 하면 그게 조미료성 단맛인지 설탕의 단맛인지 설탕이 아니라 다른 당류를 쓴 단맛인지 그런 얘기도 없고..해서 맛집블로그는 ..

--- 2012.07.30

꿈꾸는 자 잡혀간다, 송경동

그러나 그는 글 속에서 그런 가난에 끌려다니지도 않고, 즉자적인 분노에 휩쓸리지도 않고, 불타는 적개심에 자신을 소진시키지도 않는다. 어떤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척박한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일터와 일터 밖에서 노동운동가로 20여 년을 살아온 내공 탓일까.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니다. 다만 그는 역사와 노동의 진실을 보았을 뿐이다. 사실 그와 그들이 진정한 이 세계의 일꾼들이며 주인이지 않는가. 그와 그의 동료들의 손을 거쳐 비로소 아파트가, 백화점이, 영화관이, 학교가, 교회가 세워진다. 그의 손을 거쳐 비로소 건물들이 숨을 쉰다. 그의 직종은 닥트다. 사람 몸으로 치자면 닥트는 건물의 몸에 폐혈관을 심는 일이다. 마이다스의 손은 따로 있지 않다. 최경주와 그들, 건설노동자들의 손..

2012.07.29

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p17-18아주 기이하게 보이는 신앙들이나 관행들이라 해도 면밀히 검토해보면, 평범하고 진부하며 '통속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상황/욕구/활동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에서 밝히고 싶다. 진부하고 통속적인 원인들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그것들이 성/에너지/바람/비 등등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현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런 현상들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중략)생활양식들이 신화와 전설로 덮여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사회적 동질감과 사회목적의식을 갖게 될 수는 있겠지만, 그로 말미암아 적나라한 사회적 삶의 진실들이 감추어져 있게 된다. 문화의 세속적인 원인들을 감추는 기만행위는 납덩이처럼 일반 사람들의 의식을 억누른다. 억눌러오는 이 짐을 벗어버리..

2012.07.26

경계에서 말한다. 우에노치즈코/조한혜정

우에노치즈코의 첫번째 편지"타인에게 존재를 증명받지 않아도, 나는 나" 살아남기위해서는 강요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해받지도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 복종으로 보이면서 그 언어를 거꾸로 사용해 지금까지 누구도 알지 못했던 현실을 읽어내고 만들어가는 것. 만일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젠더연구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p61-62 혜정, 지난 15년동안 당신은 어떤 길을 걸어왔나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인류학자라는 것은 조국에서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것인가요? 당신은 자신의 여성성을 어떤 식으로 조정하고 협상하면서 젠더 연구를 수행해왔나요? 당신이 젊은이라는 새로운 타문화를 만난 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그동안에도 당신의 나라와 내 나라..

2012.07.24

캐테 콜비츠

조각가/화가 였던 캐테 콜비츠의 일기와 작품해설을 모아놓은 책. 책 뒤에는 '진보적 미술의 어머니'라고 쓰여있다만...나는 그이가 전쟁을 혁명을 가난한 사람들을 아이들을 어머니를 그리고 끈질기게 죽음을 그렸던 사람이기에 좋아한다. 쾰른과 베를린에 있는 콜비츠 박물관에 다녀왔었다. 조각을 보고 '우와 멋있다 잘했다'라고 느끼기는 처음이었던것같다. 뭐가 어떻고 해서 잘한거라고 말하기에 나는 조각에 지견이 없는 사람인지라 말할수는 없고.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을 1차대전으로 잃고 손자를 2차대전으로 잃었던 사람. 끊임없이 죽음을 그렸던 사람. 나이가 들어가는데 대한 얘기가 나오자 칼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마치 페터가 말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이 함께 늙으면 내가 당신 머리를 손질해줄게. 침대 정돈도 ..

2012.07.23

13072012

몇달째 입안에서 굴려봐도 걸리적걸리적, 버스럭버스럭 불편하게 굴러가는 단어가 있다.'村婦'라는 말. 아니, 촌부라는 말 자체는 괜찮은데 '건강한 촌부의 모습'이라는 말이 그렇게나 거슬린다. 내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긴 호흡을 가지고 본 적이 없어서?그간의 미약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그이들은 그이들을 타인들이 무에라 부르든 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냥 쓸데없는것같기도 해. 사실 요새는 무엇이 쓸데없고 쓸모있는건지 경계마저 흐려져간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이 무서워.

--- 2012.07.13

2012. 06. 25

지구가 망한다고 사람들이 그토록 놀리던 2012년의 절반이 지나간다.가뭄 드는걸 보니, 더위가 찾아오는걸 보니 무난한 한 해는 아니겠구나 싶다가도, 긴긴 세월 돌이켜보면 그냥 올해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그냥, 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던, y축에서 조금 위에 위치한 점으로. 이 해는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해서, 몇월에는 평년보다 몇도 낮은 기온을 기록해서 특이한 해로 기억될수도 있을게고,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은 (좋든 나쁘든) 해가 될 수도 있을게고. 가끔 어떤 심리치료에서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그래프로 표현하는 시간을 갖고는 하는데, 그렇게 수치화를 하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수야 있겠다만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걸까 싶기는 하다. 모든것에 깊은 ..

--- 2012.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