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치즈코의 첫번째 편지
"타인에게 존재를 증명받지 않아도, 나는 나"
살아남기위해서는 강요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해받지도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 복종으로 보이면서 그 언어를 거꾸로 사용해 지금까지 누구도 알지 못했던 현실을 읽어내고 만들어가는 것. 만일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젠더연구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p61-62
혜정, 지난 15년동안 당신은 어떤 길을 걸어왔나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인류학자라는 것은 조국에서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것인가요? 당신은 자신의 여성성을 어떤 식으로 조정하고 협상하면서 젠더 연구를 수행해왔나요? 당신이 젊은이라는 새로운 타문화를 만난 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그동안에도 당신의 나라와 내 나라의 관계는 변화햇고, 세계의 상황은 급속히 변해왔습니다. p62
될 수 있으면 그렇게 서로 걸어 온 길을 멀리에서부터 지켜보는 증인으로 계속 있고 싶습니다. p62-63
조한혜정의 첫번째 편지
치즈코, 우리 둘은 '근대'를 성공적으로 살아낸, 자기 통제력이 뛰어난 부류에 속하지 않나요? 현실을 언어화하는 '도구'가 되기 위해, 자신의 머리 부분만을 극도로 발달시킨 기형아들. 하하하.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일하도록 길들여진 몸을 슬슬 놀이하는 몸으로 바꾸어 가봅시다. 늘 좋은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요. 일중독에 빠지지 말고요. p79
우에노 치즈코의 두번째 편지
피해와 가해의 관계는 뒤얽혀 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가부장제의 피해자로서 딸에게는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여성은 여성을 아내, 어머니와 창부로 나누는 가부장제의 분단 지배에 길들여져 '위안부'에 대한 차별자가 되었습니다. "나를 창부 취급하지 마라"고 말하는 동안은, 일본 여성은 '조선인 위안부'뿐만 아니라 '일본인 위안부'나 점령군의 거리 매매춘도 문제로 삼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어린 증언에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으면서도, 내셔널리즘과 일치할 때만 여성의 성 피해가 문제시되는 구도를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셔널리즘은 가해와 피해를, 적과 동지를, 우리와 그들을, 분명히 나누기 일쑤지요.
이 관계는 오리엔탈리즘과 역오리엔탈리즘의 관계와 닮아 있습니다. 거기 아니면 여기, 그러한 스킬라와 카리브데스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을 어떻게 좌초하지 않고 항해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것이 포스트콜로니얼 지식인의 최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스피박)'인 포스트콜로니얼한 존재라는 것은 자기 자신 속에 적과 동지 양쪽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p97-98
우에노 치즈코의 다섯번째 편지
살아있는 몸을 가진 나는 시대를 호흡하면서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의 비일관성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나이가 드는 미지의 경험이 덧붙여집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인간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지요. p188
출산저하를 개탄하는 것은 그로 인한 경제 국가의 축소나 세수의 감소, 보험의 파탄, 장래의 노동력 부족 등을 우려하는 정계와 재계의 사람들뿐이고, 그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구와 경제로 환원된 일본의 현재 국력을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p189
조한혜정의 여섯번째 편지
나는 이 '후기 근대적'학교의 교장 노릇을 하면서 교육의 근본은 '위험과 불안의 경험에 기반하는 자아성찰적 기획'이어야 함을 보다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근대는 '정상성'이란 단어로 현실의 모순과 불행을 체계적으로 가리고 지워 온 시대였지요. 일정한 선 안에 머무는 한 불행을 보지 않아도 되고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학교에 입학만 하면 안전하고, 가정 울타리 안에 있는 한 안전하고, 국민으로 충성하기로 하는 한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근대는 '낙오'에 대한 공포심으로 유지되고 있고, 사실상 급격히 깨지고 있습니다. 근대가 깨지는 와중에 그간 눌리고 지워온 것들이 망령처럼 살아나 주변을 떠돌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구요.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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