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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내 삶을 어떻게 구했는가

나도 내털리에게 "솔직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내털리의 친구들은 '너희 아빠는 아빠처럼 굴지 않는구나'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칭찬으로 여기지만, 내털리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내 친구 앨런은 폴 지어마티와 며칠을 함께 보낸 적이 있는데, 그 후 지어마티를 보니까 내 생각이 나더라고 했다. 나는 거참 고맙군. 다른 영화배우면 안 되는거야? 하고 대꾸했다. 앨런은 내가 내털리를 대하는 방식에서 지어마티가 자기 아들을 대하는 방식이 연상된다고 했다. 우리 둘 다 자식에게 심상하고, 반어적이고, 자기 도래를 대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함으로써 부모 자식 관계에서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잔소리도 없고 훈계도 없고 약간 거리가 있는 느낌은 주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마도 나름대로 대단히..

2021.02.09

오쓰카 에이지, 감정화하는 사회

지성과 권력이 연결되는 것에 대한 혐오감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구시대적 '반지성주의'세력을 건너뛰고 감정이 권력을 빼 버린 채 국민화된 것이다. 그것이 우파와 좌파 중 어느 쪽에 경도될지와는 별개로, 반지성주의조차 내팽개치는 '감정'적인 정치가 선택될 수 있다는 리스크 속에 지금 세계가, 그리고 그 일부인 일본이 있다. 이렇듯 '감정'이 우리 가치 판단의 최상위에 놓이고 '감정'을 통한 '공감'이 사회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되는 사태를 이 책에서는 '감정화'라고 부른다. '감정'이란 ㄷ나순히 권력자나 사람들의 정치 선택이 '감정적으로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13 유코의 모델이 된 여성도 실존했는데, 현실 속 유코는 정치를 즐겨 논하고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는 지적도 있..

2021.01.25

최윤필, 가만한 당신

행복과 불행은 능력의 많고 적음보다 의욕의 많고 적음에 더 자주 영향을 받는다. 능력은 결핍일 때 주로 문제가 되지만 의욕은 과잉일 때 더 자주 말썽을 빚고, 경험으로 판단컨대 능력은 충분할 때가 드물고 의욕은 적당할 때가 드물다. 그 간극이 커지면 자신도 주변도 불행해진다. 아마 모성이 놓은 자리가 거기일 것이다. (..) 모성이 더 치명적인 것은 내든 안내든 사표나 이민 같은 탈출구도 없기 때문이다. 52-3 "조만간 미국 시민은 원고들과 같은 커플의 결혼을 흔히 보게 될 것이며, 그걸 '동성혼'이 아니라 그냥 '결혼'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젠더와 성적 지향을 빼면 그들은 거리의 여느 부부와 조금도 다를 바 없으며, 다르지 않은 그들을 다르지 않게 대하라는 게 미합중국 헌법의 요구다"라고 밝혔다. ..

2021.01.24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그러나 소수자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다수적.전체적인 말이 된 것은 아닌지 따져보기도 전에, 소수자라르 말의 '용법'이 너무 진부해져서, 이제 그 말은 로렌스나 아델 같은 아름다운 단독자들의 생명력을 죽여버린다. 소수자, 더 구체적으로는 여장 남자니 레즈비언이니 하는 말에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짧다는 것인데, 우리가 특정한 존재에게 짧은 이름을 붙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폭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단독자의 진실을 폭력 없이 말하고 싶다면 짧은 말에 기대지 말고 더 길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로렌스는 '본래 여자로 태어났으므로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 나맞'라고, 아델은 '여자를 사랑할 때만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여자'라고 말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 ..

2021.01.18

테드 창, 숨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인공지능에게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 능력이 있어서 고객이 직접 가르칠 수 있는 인공지능을 판매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그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성격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아바타도 귀여워야 한다. 106-7 데릭은 이런 아이디어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아무리 많은 책을 주더라도 유기된 어린아이들의 무리는 독학자가 되지 못한다 - 실험 결과를 알리는 글을 읽고도 놀라지 않는다. 모든 실험 그룹은 결국 야생화되어버렸다. 그러나 디지언트들은 생등적으로 공격 본능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파리대왕'식의 야만적인 존재로 퇴화하지는 않는다. 단지 비계층적이고 느슨한 무리들로 갈라졌을 뿐이다. 156..

2021.01.14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26 나읙 ㅡㄹ쓰기 스승은 그런 글을 '손이 달구어진 사람의 글'이라고 말하곤 했다. 글은 사실 머리도 가슴도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쓰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한 손만이 안정적이고 탄탄한 문장을 써낸다고. 그건 마치 요리를 하도 여러 번 반복해서 몇 가지 기본양념쯤은 손쉽게 만드는 사람의 손과도 같다. 29-30 그래서 아이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

2021.01.13

염연과, 침묵과 한숨

다름 아니라 어두울수록 더 빛이 나고 춥고 차가울수록 더 따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가 존재하는 의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존재를 피하게 하는 것이다. 나와 나의 글쓰기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던 그 맹인처럼 어둠 속을 걸으면서 그 유한한 불빛으로 어둠을 비춰 사람으로 하여금 최대한 어둠을 보고서 확실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빛나거나 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22 그 부유하고 개방적인 국가의 발전을 위해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강제로 철거당한 백성은 호소할 데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베이징의 거리에서 집단적으로 독약을 먹고 자살하다가 급히 구조된 뒤에 또다시 '사단도발'의 죄명으로 공안에 의해 구금되고 말았다. 누군가 그들의 자살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또다시 자신의 내면에..

2021.01.05

한정현, 소녀 연예인 이보나

"이제 소녀 연예인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 아사쿠사까지 견학을 갈 필요가 없어요." 기사 속 배구자의 인터뷰를 보며 희는, 어쩌면 국경을 넘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은 소녀 연예인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또 다른 소녀들의 숨길 수 없는 사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51 실제 조선에서도 카프를 중심으로 레뷰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긴 했다. 물론 식민지 조선의 레뷰는 제국의 스펙터클 전시장이 되어 갔으므로 그 시도는 오히려 소녀들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과연 카프가 당대의 사회 역사적 맥락을 제거한 채 무조건 그 소녀들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술 노동자로서의 여성은 1900년대에서 현재까지, 너무나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어떤..

2021.01.04

크리스 크라우스, 아이 러브 딕

흥미진진 페미니즘 이성애 소설.. 주인공 크리스가 딕에게 빠졌던건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고, 하지만 너무 예견된 비극. 딕같이 이꼴저꼴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 크리스같이 자의식 강한 사람을 좋아할리는 없으니까. 크리스가 여성이라서 많은 기회를 박탈당한 것은 맞을지 몰라도, 자의식과 인정욕구가 동시에 강한 사람은 나도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어쨌든 소설은 무척 재밌음. 사실 이 소설은 딕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는게 주가 아니라 ..그러니까 중요한건 딕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문제를 중층적으로 해석하는 그 작업 자체가 요지일텐데, 책이 나오자마자 나왔던 기사는 그래서 딕은 실제로 누구를 가리킨다..이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어휴. 그러나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그저 이 합작을 즐기고 있는 실베르는 그들이..

2021.01.03

에두아르 루이, 에디의 끝

트랜스젠더에 대한 소설인 줄 알았는데 게이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는 감동적인 구절이라곤 딱히 없어서 인기가 없었던 듯도 싶은데... 나는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동성애자들이 겪는 모순, 번민, 착각 이런 것들이 아주 잘 드러나있어서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하나... 동성애자도 똑같은 사랑을 하니까 이성애자랑 똑같은 권리를 달라는 류의 말은 어떤 법제도적 권리를 쟁취하는데에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정상성이라는 인식체계를 뒤흔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에겐 그닥 매력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권리 없음이 부당함의 상황인건 맞으니까 결혼제도의 다양화를 가져가는건 필요하겠지만 굳이 동성혼인법이 아니더라도 생활동반자법이나 시민결합법 같은 형태로 가져갈 수 있지 않나 그런 고민을 하긴 ..

2021.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