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동자 안의 지옥, 캐서린 조

stri.destride 2021. 8. 12. 18:23


와 읽다가 자는게 아까워가지고 거의 날밤샜음,, 근데 이거 완전 K-장녀의 K-시월드 체험기 아닌가? 다음 세대에는 지금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내가 문학과 이야기의 매력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숫자로, 확실한 것으로 관심을 돌리기를 바랐지만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높은 그리스신하와 여러 고전문학을 읽으며 성장했다.
아버지는 명확한 사고를 하고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을 원했다. 우리가 현대사회가 주는 혜택을 멀리하고 세상과 떨어져서 본인이 정한 규칙 외에는 어떠한 규칙도 따르지 않도록 양육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학교나 대중문화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말라고 배웠다. 아버지의 관점에서는 모두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숨이 막히는 삶이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우리는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떡갈나무 아래의 해먹에 누워 꿈을 꾸었다. 하늘을 꿈꾸고, 탈출을 꿈꾸고, 자유를 꿈꾸었다. 68

테디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상을 둘러보기 위해 배낭을 꾸려 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설명하기 힘들어." 테디가 내게 말했다. "그냥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아." 나는 그의 말뜻을 알았다. 질식할 것 같고 걸어야 할 것 같은 기분. 나도 자주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했다. 이것이 내가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이유였다.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고, 경계가 없으며, 갇혀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때때로, 특히 여름에,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오고 태양이 은빛 빌딩들 사이에 자리를 잡으면 걷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바람을 거스르며 울부짖었다. 69


숨이 목구멍에 걸린다. 나는 울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내 마음에 끊임없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문이 있는 것 같다. 케이토.
"보고 싶어." 제임스가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눈에 눈물이 맺히는 느낌이 들지만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다. 내일 제임스를 보게 될 것이다. 기뻐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무덤덤하다. 어딘가에 감정의 불꽃이 있을 텐데 점화할 수가 없다. 117

그중에서도 '항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를 가장 괴롭혔다.
"결혼한 뒤에는 맞춰줘야 해요." 그녀가 내게 경고했다.
"항복할 줄 알아야 하죠."
그녀는 '내가 항복할게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녀는 남편이나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말을 하고 웃었다. 왜지? 나는 동의하지 못했다. 왜 항복해야 하지? 그리고 나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거부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내 불만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할 지 뻔했기 때문이다. 화를 내며 내가 시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경고하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못되게 구는지에 대한 한국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시댁이란 그래." 불만에 찬 어조로 말하는 어머니의 눈은 어둡게 번쩍일 것이다. 133

모든 거짓말과 모든 억측을 전부 먹어치우고 진실만 남은 뒤에야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서 모순을 보았다. 모험을 좋아하고 어린 소녀의 영혼을 가졌지만, 전통적인 결혼과 가족이라는 상자에 자신을 넣은 여성. 그녀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었고,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했다. 그녀는 지정된 길을 따르거나 이를 완전히 부수어야 하는 갈림길에서 순응을 택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습관처럼 하는 말이 '항복할게요' 였다. 이것이 진실이었다. 그녀는 항복하기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그래서 행복해지기로 선택했다. 그녀의 아들, 즉 내 남편은 그녀의 모험심을 물려받은 유일한 자녀였으나 그녀를 남겨두고, 그녀가 알고 사랑했던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런던으로 떠났다.
제임스의 아버지에게서 제임스의 모습이 보인다. 단지 극단적인 형태로 보일 뿐이다. 지식과 지혜를 지닌 친절한 남자. 수년간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아오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남자. 의사로서 느끼는 무력감이 그가 일상의 잠재적인 위험 신호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질병과 걱정이 지배하는 새로운 관점이 생겨났다. 이것이 그를 신앙심 깊은 종교인으로 만들었고, 그는 자신의 세 아들이 종교적으로 뒤따르기를 바랐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있음을 감지했다.
소중하고 선택받았으며 사랑받는 셋째 아들인 제임스는 동화에서처럼 숲에서 길을 잃은 두 형제와는 다르게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운명을 타고났다. 나는 제임스의 행복한 어린 시절 아래에 새로운 차원의 어둠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과 질병, 증상을 지속해서 상기하고, 이를 통제할 수 없음을 상기하는 것. 이것이 남편을 원칙적이고 명확하게 사고하는 남자로, 언제나 체계적이고 통제력을 잃지 않는 남자로 만든 힘이었다.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