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stri.destride 2013. 3. 17. 16:06



말랑말랑한 힘

저자
함민복 지음
출판사
문학세계사 | 2005-01-2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강화도 개펄에서 캐낸 말랑말랑한 힘으로 빚은 탄탄한 생명의 황홀...
가격비교


작년 봄에 도서관 화면에 띄워져 있던 기형도의 시를 보고 헉 한적이 있었는데

그러고나서 시집을 빌렸던걸로 기억하는데 졸업했다고 대출기록이 사라졌다 ............ 으아니



함민복의 시집을 재작년 오월에 이리에서 처음 읽었던걸로 기억한다. 그 때 이 책이 참 좋았는데, 다시 읽으니까 다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고 .. 그렇다. 내가 강화도를 좋아해서 함민복의 글을 더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의 삶에 마음이 끌려 그의 글을 더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강화도에서 살던 시인은 시를 쓰고, 인삼을 팔고, 어민들과 이야기 하고, 그에 대한 시를 쓰고, 그러다가 결혼을 했다. 아예 그렇게 늦게 결혼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괜찮지 싶다. 늦고 이르고 - 적당한 때가 어디 있으려고. 


사실 함민복의 산문은 '눈물은 왜 짠가'와 작년 경항신문에 실렸던 칼럼을 읽은게 전부다 허허

시는 신기한게, 소리내어 읽으면 더 곱다. 단어 하나 하나, 그 시인이 얼마나 공들여서 골랐기에 그랬을가 싶어 아뜩하다.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봄 꽃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초승달


배고픈 소가 

쓰윽

혓바닥을 휘어

서걱서걱

옥수수 대궁을 씹어 먹을 듯




불 탄 산


나무와 나무 사이

청설모 길도 붉게 타올랐다

꽃핀 진달래가 지글지글 끓었다

솔방울이 불 방울이 되어 굴렀다

불꽃의 산이었다

검은 그림자들이 빽빽이 서 있었다


아흐레 지난 새벽,

재 냄새가 마을 가득하다

한 몸이 된 나무들 내음


봄 비 다 





소낙비 쏟아진다

이렇게 엄청난 수직을 경험해 보셨으니


몸 낮추어


수평으로 흐르실 수 있는 게지요

수평선에 태양을 걸 수도 있는 게지요 



그늘 학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 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 더 앉아있어야겠다.



그리움


천만 결 물살에도 배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다.



오염시키지 말자

죄란 말

칼날 처럼

섬뜩 빛나야 한다

건성으로 느껴

죄의 날 무뎌질 때

삶은 흔들린다

날을 세워 

등이 아닌 날을 대면하여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구분하며 살 수 있게

마음아

무뎌지지 말자

여림만으로 세울 수 있는

강함만으로 지킬 수 있는

죄의 날

빛나게

푸르게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자

겁처럼 신성한

죄란 말

오염시키지 말자 



물고기


부드러운 물

딱딱한 뼈


어찌

옆으로 누운 나무를

몸 속에 키우느냐 

뼈나무가 네 모양이구나

비늘 입새 참 가지런하다


물살에 흔들리는

네 몸 전체가

물 속

또하나의 잎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