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일용이,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stri.destride 2013. 3. 16. 17:08



우리 반 일용이

저자
김숙미 지음
출판사
양철북 | 2013-01-1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교사와 아이가 만나 관계를 맺는 교실, 그 안에서 들려주는 감동...
가격비교


어릴 때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낸 책들을 몇 권 읽고 자랐다. 초등학교 저학년땐 그룹으로 선생님 집에 가서 글짓는 학원?도 다니고 고학년땐 선생님이 집에 와서 글쓰기 공부하고 그랬는데 중학교때 논술은 딱 한 달 다니고 그 뒤로 다니질 못했고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게 중학교 삼학년한테 박노자 책을 일주일만에 읽어오라고 하는게 ...;; 커리큘럼이 뭐 선생님들이 그럴 테니까 그렇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참?). 이런걸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가 나중에서야 그게 내가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게 만든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어린이 문집을 엮어서 낸 책들이 있는데, (http://www.changbi.com/catalog/list.asp?pKind=09&pCode=07 참조) 이 책들 중 몇 권을 읽었고, 그 외에 이오덕선생님이 엮으신 책 같은거나 나 어릴 적 내 또래 애들이 독후감을 모아서 출판하는게 살짝 유행?이었는데 그런 글도 읽고 뭐 그랬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우리반 일용이라는 책도 어린이 문집일 것 같지만, 이 책은 선생님들이 쓴 책이다. 1986년에 쓴 글도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2000년대에 쓰여진 책들이다. 앞 부분은 중등학교 선생님들이 쓰신 글, 뒷 부분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쓰신 글. 머리말이 참 좋다. 


아이들은 아직 생각이 덜 자랐으니 어른들이 끌어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오히려 아이를 망친다고 봅니다. 아이들도 온전한 생각과 느낌을 가진 귀한 인격체입니다. 이 세상 온갖 생명체가 그러하듯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살아갈 힘을 지니고 났습니다.

믿고 기다려 주는 것, 따뜻한 눈길로 있는 그대로 봐주고, 진심으로 끄덕이며 들어 주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교사가 할 일이고 어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말, 구자행 


글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글쓰기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런데 2000년대라는데도 나 어릴 적 봤던 1980년대의 아이들 만큼이나 가난하고, 집에서 돌보아 주지 않는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 괜시리 마음이 아리다. 아이들이 우는 대목이나 선생님과 싸우는 대목이나 시무룩해 하는 대목이나 선생님이 그로 인해 마음아파 하는 대목이나..참 여러 번 울 뻔했다. 삶을 담아낸 글들이 가지는 힘. 많이 웃고, 울게 한 책이다. 


생각해 보면 한 번이라도 안아줄 것을. 그저, 내가 지금이라도 너를 믿고 있다는 이 진심을 호식이가 알아줬으면 하는 작은 욕심이 있다. 80-81쪽


가을 비가 끝없이 온다. 유리창에 물방울이 또록또록 맺혔다. 공부시간에 왜 이런 문제도 모르냐고 나는 딱딱한 얼굴로, 사랑 없이 말했고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111쪽


튤립을 보니 기쁜 마음이 들었어요. 꽃아, 꽃아, 평화를 받고 살아. 넌 색깔이 두 개야. 그래서 예뻐. 183쪽


얼마 가지 않아 아이들은 자연스레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것, 모두 다 자기가 가진 날개를 꺼내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느라 숨소리도 안들리게 조용해진다는 것. 


이렇게 예쁜 녀석을 왜 몰라봤을까. 시력 좋은 눈을 달고 있다고 해서 다 제대로 볼 수 있는건 아닌가보다. 220쪽


나는 누가 울 때에, 왜 우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울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울게 하는 것처럼 나쁜일이 이 세상엔 없을거라 여깁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살아합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임길택 -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초등교원으로 임용 된 친구가 신임교원 연수를 다녀온 후에, 아이들이 보통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를 포함한 가정 환경이 안좋은 경우가 많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얘기해줬었다. 보통같았으면 '아 맨날 사람이 잘못되면 다 부모나 집안잘못이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학교 아니면 집이 그 아이들을 품는 장소 아닌가 싶으니 그 말이 맞겠지도 싶고 ..

나는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말을 매우 잘 듣는 혹은 속을 썩이지 않는 아이의 축에 속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감당이 안된다. 지금도 교단을 지키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많은 선생님들에게, 새삼 감사하게 되는 책. 그리고 내가 겪고 보았던 무례하고 비인격적이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도 있게 되는 책. 책의 마지막 글에는 , 정신없이 살아가던 내 뒤통수를 치는 구절이 있었다. 인용의 인용이지만, 옮겨 둔다. 


검은 민달팽이 한 마리가 길위에 나와 있다. 문득 달팽이가 느리다거나 내가 빠르다는 건 진실과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엔 자기만의 속도가 있기 때문이다. 달팽아 너는 네 속도로, 나는 내 속도로 가자. 그럼 우린 잘 가는거다. 순진, 순진한 걸음 48쪽


누가 조금 더 빠른가 느린가에 상관 없이 우린 결국 제 때에 목적지에 닿게 된다고 산드라는 말했다. 같은 책, 126쪽 


아쉬운 말을 하나 덧붙이자면, 많은 글 들에 배어 있는 아이들과 세상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태도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고, 우리는 옳고, 아이들은 옳다는 그런 태도가 가끔씩 약간은 버석버석거린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바른 사람이고 싶고, 아이들이 바르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선생님들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 하듯이 학교에 오면 자리에 앉고, 밥을 기다리고, 공부를 하고. 타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사소한 '공공예절'들이 너무 당연시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앞부분을 보면 연제고등학교 학생들이 쓴 시가 있는데 진짜 한참 웃었다. 정말 소질 있는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