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카와 미와, 고독한 직업

stri.destride 2021. 2. 10. 18:59

그러므로 내게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한 인물을 우러렀던 경험이 없다. 만화 캐릭터든 운동선수든 내가 좋아하는 대상과 옆 사람이 좋아하는 대상은 다른 것이 당연했으며, 서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상대방의 취향과 기호에 어떻게든 맞장구를 쳐주며 자랐다. 그래서 역사 체험에서 우러나온 전체주의 알레르기는 아니지만, 모두 함께 같은 쪽을 바라보는 것은 왠지 가식적이라고 느낀다. 그래도 인간의 마음에는 때로 환영이 필요하다. 홀로 걷는 길은 무섭다. 크든 작든 관계없이 내가 나아가는 길을 비춰줄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그 사람이 살아 있다. 그러니 나도 살아갈 수 있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26

 

말투도 차림새도 턱없이 젊은이 흉내를 내고 있는 느끼한 영화 업계 아저씨 아줌마를 상대로 이제까지 20여 년의 인생 경험이나 특기 따위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고작 이건가 싶어서 스스로가 허무하게 느껴졌다. 모조리 떨어졌다. 연립주택 우편함에서 "유감스럽지만 불합격을 통보드립니다"라는 엽서를 발견했을 때 등줄기로 싸늘하게 찬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도 어지간했지만, 더더욱 쓰라린 것은 "합격자에게만 전화로 연락드립니다"라는 경우다. 전화가 걸려올 만한 시간대에 집을 비울까봐 날마다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서 맹렬한 기세로 자전거를 달려 귀가하지만, 부재중 전화 램프도 깜빡이지 않은 채 그대로 울리지 않는 전화를 사흘, 닷새, 일주일, 열흘 .... 하염없이 바라본 끝에 어쩌면 이건 이미, 하고 스스로 결과를 깨닫는 그 순간. 지금 돌이켜봐도 명치를 칼로 푹 찔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불합격이라는 현실 자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몇 번이나 면접을 봐도, 몇 번이나 떨어져도, 대체 내 어디가 잘못되었던 것인지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무엇을 약으로 삼아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 털끝만큼도 알 수 없었다. 40

 

취사선택의 잔혹함을 행한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일시적인 위안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십수 년 전 몇몇 회사의 면접을 봤지만 이도 저도 되지 못했던 그 발붙일 데 없는 비참한 느낌 또한 이야기 속에 사람의 감정을 묘사할 때 더없이 소중한 비법서가 되었다. 탈락한다는 것은 그것을 제외한 모든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45

 

어떤 작품을 상영할지 선정하는 데는 마지막까지 그룹의 총괄책임자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 활동의 참가자 중에는 전설의 양아치 영화나 야쿠자 영화, 살인자의 도주극 등을 만들어온 그야말로 무정부주의자에 무력투쟁파인 프로듀서와 감독 등 쟁쟁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자신들의 평소 신조는 제쳐두고 이번에는 이례 중의 이례로, 어쨌거나 '사람이 죽지 않고' '사람의 죽음을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으며' '쓰나미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없는' 작품으로 범위를 줄여보자는 기준을 정했더니, 상영 허가를 받았던 일본 영화 DVD 중에서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작품은 <남자는 괴로워> 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 참가한 감독들의 작품은 전멸했다. 가정 붕괴나 옥신각신하는 인간관계만을 그려온 나도 당연히 격침당했다. 이제껏 영화윤리기구 등의 '기준'에 호되게 맞써 싸워왔ㅇ르 사람들이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뭐, 처음이니까요" 라며 가만가만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회장으로 유도했다. 66

 

"이곳은 큰 피난소여서 감사하게도 가수 분이나 다른 여러 분들이 줄줄이 격려해주러 오시는데요, 솔직히 여기 사람들은 이제 그런 이벤트에는 엄청 지쳐 있어요. 사실은 이제 쉬고 싶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릴 여유도 없지만, 그런 부분도 도호쿠 사람의 기질이랄까요.... 모처럼 멀리서 와주신다니 자리에서 일어나 보러 가지 않으면 실례라고들 하니까 다들 힘내서 나오는 거예요." 67

 

영화감독이 천직인 타입이라면 또 모를까, 나 같은 기량의 사람에게 영화 촬영은 골치 아픈 일의 연속이어서, 그중 즐거웠던 추억을 내 안에서 곱씹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해나갈 희망을 잃어버린다. 이번에는 지면을 빌려서 일단 나의 정신적인 회복을 위해, 이 일을 하면서 정말로 좋았다고 여겨지는 즐거운 만남, 뜻깊은 추억을 적어봤습니다. 78

 

그림 같은 초호황기, 대음주운전 시대, 고추 주변에 털이 나기 시작한 지 고작 7,8년 된 남자들이 밤마다 차를 굴렸고, 그것을 여자가 차째 굴렸고, 세상은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있었다. 이제는 먼 옛날. 나는 마흔이 다 되엇지만 주위에 외제차나 스포츠카, 고급 세단을 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친환경 차, 친환경 운전을 추진하는 버블 뒷감당 시대, 뒤치다꺼리 시대. 서른 살이 넘은 배우가 도라에몬의 노비타로 분장해서 역시 자동차 면허를 따러 가는 편이 좋겠지요, 하고 조심스레 권하느 ㄴ광고가 나온다. 100-101

 

지방 출신인 저에게 도쿄라는 장소는, 20년 가까이 살았지만 아직도 '빌려서 지내는 누군가의 땅'이라는 느낌이 여전합니다. 결코 소외시키지는 않지만 받아들여주는 주인의 실태도 잘 알 수 없는 땅. 저처럼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하는 부유믈들은 그 얼굴 없는 거리의 온도 낮은 거대한 품에 느슨히 안겨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쿄를 '나의 거리'로서 찍기란 불가능하지만, '다른 곳에서 흘러온 부유물들의 집합체'라는 점 역시 도쿄의 한 얼굴이라는 생각에 도전을 단행했습니다.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