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 손보미 임솔아 지혜 천희란 최영건 최진영 허희정,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stri.destride 2021. 2. 9. 21:37

제목으로 오해했으면 큰일날뻔했네 

최진영 임솔아 소설이 나는 제일 좋았다 

 

능원은 어느 날 사라졌다. 작별 인사는 없었다. 능원의 연락처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아란은 그때야 알았다. 그의 본명도 알지 못했다. 능원은 중학생 때 감자칩 한 박스를 훔친 적이 있었다. 그게 능원의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다. 능원이 키우던 개가 자신이 낳은 강아지를 잡아먹은 적이 있었다. 토란국을 좋아했다. 드림캐처를 좋아했다. 유난히 작은 자신의 외꺼풀 눈동자를 좋아했다. 칸나꽃을 싫어했다. 청설모를 무서워했다. 능원에 대해 아란은 알고 있는 것이 많았다. 그냥 그게 다였다. 

 

"갈 곳이 없어지면, 나를 찾아와."

아란의 얼굴을 바라보며 단영은 서 있었다. 목어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란과 단영은 목어 소리를 향해 걸었다. 요사채에 거의 도착했을 때, 단영이 아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응"

단영이 아란에게 답을 했다. 아란은 이제 가야 할 곳이 생겼다. 단영이 찾아올 수 있는 곳에 있으려면 우선 여기를 떠나는 게 마땅했다. 이사를 다니지 않으면서, 한 곳에서 잘 살고 있어야 했다. 그날 저녁은 공양 시간에 단영이 재잘대지 않았다.

 

이보배는 중학고 3학년 때 위경련 때문에 한 학기에만 응급실에 세 번 갔었다. 내시경을 했는데 위는 멀쩡했다. 의사는 스트레스성 위경련이라고 했다. 스트레스성이기 때문에 치료법도 없었다. 이보배는 예고 없이 닥치는 위경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보배는 초등학생 때도 스트레스성 발진 때문에 피부과에 다녔다. 스트레스는 유령처럼 떠돌다가 이보배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어른들은 여자애 성격이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보배는 둔했다. 자기가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모를 만큼 둔했다. 그래서 몸이 아픈거였다. 감정이 둔하니까 몸이 신경질을 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