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내 삶을 어떻게 구했는가

stri.destride 2021. 2. 9. 21:33

나도 내털리에게 "솔직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내털리의 친구들은 '너희 아빠는 아빠처럼 굴지 않는구나'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칭찬으로 여기지만, 내털리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내 친구 앨런은 폴 지어마티와 며칠을 함께 보낸 적이 있는데, 그 후 지어마티를 보니까 내 생각이 나더라고 했다. 나는 거참 고맙군. 다른 영화배우면 안 되는거야? 하고 대꾸했다. 앨런은 내가 내털리를 대하는 방식에서 지어마티가 자기 아들을 대하는 방식이 연상된다고 했다. 우리 둘 다 자식에게 심상하고, 반어적이고, 자기 도래를 대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함으로써 부모 자식 관계에서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잔소리도 없고 훈계도 없고 약간 거리가 있는 느낌은 주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마도 나름대로 대단히 다정한 말투야" 44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위반에,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폭력에 전율을 느끼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나 자신의 어두운 면을 다시 깨치는 대리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추락하기 전에 얼른 몸을 뺌으로써 죽음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내 안에 천사와 동물이 정확히 어떤 비율로 존재하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를 외면해버린다.

대학에서 그리스 비극을 모조리 읽고 그에 관한 수업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은 태평하게 이렇게 생각했다. "흠, 저 비극적 결함이란 건 꽤나 대칭적이군. 오이디푸스를 영웅으로 만든 요소가 또한.." 당시 내가 뭘 알기나 했던가? 아무것도. 우리의 충동을 이끄는 힘이 또한 우리의 몰락을 보장한다는 사실, 우리가 태어난 날이 곧 사형 선고를 받는 날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지금처럼 뼈저리게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필립의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해명하고 변명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그 말도 실수였다. 왜냐하면 언어는 우리를 실패시키는 데 실패하는 법이 없고, 우리를 패배시키지 못할 때가 없고,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 그러나 지금 나는 이렇게 말라붙은 풀로 종이를 붙여 그 갈라진 틈을 가리려고 애쓰고 있다. 

 

블라디미르 포즈너에 따르면, 러시아 사람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실제로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장황하게 지껄이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인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보나마나 이렇게 대답한다. "괜찮아요." 우리는 괜찮고, 발전하고 있고, 나아가고 있고, 꿈을 이루고 있고, 모든 게 다 좋고 ... 111 

 

그러나 내가 정작 우리 가족에게서 본 것은 끔찍한 체제가 작동하는 모습이었다. 가끔 나는 1980년대에 서방으로 여행 와서 공산주의를 칭송하는 소리를 듣게 된 동유럽 사람 같은 기분이 든다. 평생 어머니 러시아의 억압적인 비호 아래에서 살았던 동유럽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 국가에 대한 순진한 찬송을 듣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말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 자란 나 자신의 경험을 나쁘게 왜곡한 시각이란 걸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 앞에서 진보적 행동주의가 세상을 구할 거라는 말은 하지 마라. 이상주의적 수사와 너덜너덜한 현실의 괴리가 워낙 깊었기 때문에, 이후로 나는 공익에 참여하는 능력을 영영 온전히 되찾지 못했다.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