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수자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다수적.전체적인 말이 된 것은 아닌지 따져보기도 전에, 소수자라르 말의 '용법'이 너무 진부해져서, 이제 그 말은 로렌스나 아델 같은 아름다운 단독자들의 생명력을 죽여버린다. 소수자, 더 구체적으로는 여장 남자니 레즈비언이니 하는 말에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짧다는 것인데, 우리가 특정한 존재에게 짧은 이름을 붙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폭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단독자의 진실을 폭력 없이 말하고 싶다면 짧은 말에 기대지 말고 더 길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로렌스는 '본래 여자로 태어났으므로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 나맞'라고, 아델은 '여자를 사랑할 때만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여자'라고 말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 이 말들조차도 너무 짧다. 충분히 길게 말하려면 세 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두 감독은 세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긴 영화가 윤리적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어떤 진실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최소한의 시간을 요구해오기도 한다. 35
왜 갑자기 한국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은 일제히 반성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이 감독들은 정말로 30대의 어느 날엔가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읽고 일제히 자신의 20대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숙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일까. 그래서 금시작비 하여 개과천선의 심정으로 옛사랑에게 회한의 편지를 띄우게 된 것일까. 남자들의 성숙을 증명하는 이 변화는 그 자체로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그러나 조금 미심쩍은 데가 있다. 왜 관객들은 영화의 끝에 이르러 이 모든 오해와 파국이 단지 남자의 착시가 낳은 왜상이었을 뿐, 그의 여자는 늘 충실한 연인의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가. 45
"자연은 실로 모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암시하고 경고한다.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이빨을 뽑아놓고,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뜯어놓고, 시력을 훔치고, 얼굴을 추악한 가면으로 바꿔놓고, 요컨대 온갖 모멸을 다 가한다. 게다가 좋은 용모를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을 없애주지도 않고, 윌 주변에서 계속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로운 형상들을 빚어냄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한층 격화시킨다." 데이비드 실즈,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재인용 59
"어떤 조건하에서 80명이 오른쪽을 선택할 때, 문학은 왼쪽을 선택한 20명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다. 그 20명에게서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려고? 아니다. 20명이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왼쪽을 선택했음을 20개의 이야기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도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는 없을 그런 상황을 창조하고,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 이것이 문학이다." 65
왜 저스틴의 우울은 하필 결혼식을 배경으로 재현되는가. 동성끼리의 결혼이 금지된 사회에서 결혼식은 이성애적 정체성을 공적으로 선언하고 확인받는 의식이다. 젠더트러블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유아기에 우리가 최초로 맞닥뜨리는 금기는 근친상간 금기가 아니라 동성애 금기라고 말한다. 동성 부모라는 사랑의 대상을 상실해야만 정상적으로 형성되는 우리의 이성애적 젠더 정체성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우울증적'이라는 것이 그의 논변이다.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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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에는 우리가 마음껏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복장이 터지는' 종류의 답답함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인간들의 집합적 이성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가는 '합리적 부조리'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바닥 없는 벼랑을 바라보는 막막함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성은 때로 방황할지언정 끝내 빛의 출구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는, 이성의 오작동은 언제 어느곳에서든 일언라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을 막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깨달음이 들어선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이것이다. 광기의 창궐로 열린 지옥의 문은 이성으로 닫을 수 있지만, 이성의 집단적 사용이 자체의 한계 때문에 열어버린 지옥의 문은 무엇으로 닫을 수 있을 것인가. 127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133
진실과의 대면이라는 일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진실과의 대면은 늘 그렇게 '충돌'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149
어떤 영화의 태도가 윤리적인지 아닌지랄 판단하는 기준 중의 하나는 그 영화가 악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에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를 윤리적인 혼란에 빠뜨리는 일들은 대체로 선과 악이 서로 번지고 섞이는 불투명한 경계지점에서 발생한다. 선과 악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 서사들은 선과 악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선한 우리는 악해질수가 없을 것이라고 안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이라는 판타지 못지않게 이것 역시도 일종의 윤리적 판타지일 수 있다. 진정으로 윤리적인 태도는, 선의 기반이 사실상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악의 본질이 보기보다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선의 악'과 '악의 선'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태도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악에도 다 이유가 있으니 이 세상에 이해 못할 악은 단언하면서 다 같이 윤리적 상대주의의 불지옥 속으로 뛰어들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악은 자신이 한 번도 악이었던 적이 없다고 믿는 자들에 의해 행해진다. 적어도 이야기라는 장르에서만큼은 이 세상의 모든 단호한 경계들에 대해서 확신보다는 회의를 품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61
어떤 감정의 순수한 원형 혹은 완벽한 전형이 존재한다는 생각이야말로 판타지의 핵심이다. 판타지는 현실을 혐오하게 만든다. 사라잉 판타지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사랑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앨리스의 한결 가벼워진 미소를 '해독된 사랑의 미소'라고 부르면 어떨까. 190-191
믿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면, 살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는 것.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고통이 닥쳤을 때, 이성으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닐 수 있다. 그러하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초월적인 것을 믿기로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해야 한다. 201
나는 이 영화를 참혹한 기억을 극복하고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서 '사실과는 다른' 혹은 '사실보다 더 나은'것을 선택한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인간의 고통을 신학뿐만이 아니라 해석학적 물음과 연결해서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깔려 있는 저 불굴의 실용주의가 전적으로 올바른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소설가나 직원들의 선택에 선뜻 동조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203
결국 텍스트에 대한 모든 해석은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일 뿐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2013년 하반기 내가 읽은 텍스트들은 대체로 '삶의 의미'라는 주제 둘레로 모여들어 서로 연결되고는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렇게 되기를 내가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14
어떤 존재의 처지가 주인이나 노예냐 하는 것이 그가 자기 삶에 대해 주인인지 노예인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ㅣ 노예에게 주인인 자가 삶에 대해 노예잉ㄹ 수 있고, 주인에게 노예인 자가 삶에 대해 주인일 수 있다는 것. 224
뛰어난 서사는 대개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성취한다. 1. ㅇ익숙한 모티프들로 새로운 논점을 창출하기 2. 익숙한 논점들로 새로운 인식을 생산하기. 최소한 둘 중 하나라도 성취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익숙한 모티프들로 익숙한 논점들을 창출하고 거기서 익숙한 인식을 생산해내는 것에서 멈춘다면, 즉 익숙한 것의 대규모 반복에 불과하다면, 그 서사는 성공적인 엔터테인먼트로 그친다.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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