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화가 였던 캐테 콜비츠의 일기와 작품해설을 모아놓은 책.
책 뒤에는 '진보적 미술의 어머니'라고 쓰여있다만...나는 그이가 전쟁을 혁명을 가난한 사람들을 아이들을 어머니를 그리고 끈질기게 죽음을 그렸던 사람이기에 좋아한다. 쾰른과 베를린에 있는 콜비츠 박물관에 다녀왔었다. 조각을 보고 '우와 멋있다 잘했다'라고 느끼기는 처음이었던것같다. 뭐가 어떻고 해서 잘한거라고 말하기에 나는 조각에 지견이 없는 사람인지라 말할수는 없고.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을 1차대전으로 잃고 손자를 2차대전으로 잃었던 사람. 끊임없이 죽음을 그렸던 사람.
나이가 들어가는데 대한 얘기가 나오자 칼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마치 페터가 말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이 함께 늙으면 내가 당신 머리를 손질해줄게. 침대 정돈도 해주고, 함께 우물거리면서 이야기하자고."
1922. 07
예전에는 옆을 바라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공격당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은 지독하게 겁을 먹기도 한다. 청춘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게 나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 안에 거대한 힘이 있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텐데. (중략)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건 오직 눈가리개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만 보고 파고드는 것이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1912. Sylbester. (12.31)
그때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사회주의 예술가'라는 딱지에 대해서 이 대목에서 몇가지 밝히고 싶다. 내 작품이 이미 그 당시에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을 받아, 그리고 당시에 모든 문학의 영향을 통해서 사회주의 쪽으로 기울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때부터 거의 노동자의 생활만을 소재로 선택한 원래 이유는 단순히 내가 선택한 소재들이 아름답다고 느낄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매춘, 실업 등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나를 괴롭혔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래서 천민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계속 묘사했던 것 같다. 그들을 반복해서 묘사함으로써 내가 환기구 역할을 하거나 삶을 지탱해 나가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기질 역시 이런 경향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때로는 부모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꺼내기도 하였다.
"삶에는 즐거운 일들도 있단다. 근데 왜 너는 이렇게 어두운 면만 그리니?"
나는 거기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나한테는 아무런 매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건, 처음에는 아주 소량의 동정과 동정감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묘사하도록 이끌었다는 점이다. 보다 큰 이유는 나는 그걸 아름답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p426-427. 회고록.
Selbstbildnis mit aufgestuetztem Kopf , 1889/91 (머리를 받치고 있는 자화상)
Deutsches Kinder Hungern 1923 (굶주린 독일 아이들)
Nie wieder Krieg (1924) 전쟁은 다시 일어나선 안된다
Tod packt eine Frau (1934) 죽음이 여자를 붙들다
Selbstbildnis (1898)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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