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생명과 무덤 사이에서 사는 한 생명의 눈 마주침. 그 둘 사이에서 거대 도시의 탁하고 숨막히는 공기는 잠시 맑아졌다. 그 맑음을 보았다고 말하는 필리핀 여행자는 문명의 멜랑콜리 속에서 잠시, 착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착각을 잠자는 방의 전등에 걸어두었다. 13
화어를 만든 이는 수산가공품의 부가가치를 염두에 두기는 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다 곁에서 보내는 새벽과 아침, 오후와 저녁, 그리고 밤. 그 생애 동안 바다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벼려지고 벼려지다가 마침내 화어를 만들자, 작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물고기를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소금을 얼마나 쳐야 물고기의 살들이 썩지 않는지, 어떤 햇빛에서 말려야 포실하게 몸결이 일어날지, 어떤 물고기에 어떤 색을 입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색들의 조화가 보고 먹는 이들의 감각을 깨어나게 할지. 그것은 아마도 본능으로 그가 가졌던, 그리고 바다 곁에서 익혔던 눈썰미일 것이다. 17
밤에 잠에서 깨어 창으로 들어오는 가로등의 불빛 속에서 물고기 모빌을 바라볼 때, 바닷속에 누워 흔들거리며 헤엄치는 여러 빛깔의 물고기를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모빌을 올려다보며 잠이 들곤 했고, 잠을 설치거나 꼬박 눈을 붙이지 못하기도 했고, 책을 읽고 메모를 하기도 했다. 해가 뜨고 지고 살았던 그냥의 날들. 행운의 날들. 그시간동안 물고기 모빌이 있는 한 내 침실은 가상의 바다였다. 그 바다는 휴식처였고 불면의 해풍이었고 심해 속에서 부유하는 그림자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관념적인 싸움이 일어난 싸움터이기도 했다. 19
착각에 머물다가 홀연히 깨어나는 것은 행운에 속한다. 착각이라는 단어 속에는 광기에 이르는 '착란 상태'에 대한 예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착각은 파탄의 입구이다. 착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인간의 시간은 무작정 헝클어져버린다. 앞의 일에서 착각이 일어났지만 뒤에 올 일이 착각 상태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지는 않는다. 더 깊고 깊은 움직이는 늪으로 인간을 끌어들인다. 30
시인에게 무슨 목표가 있을 것인가. 목표가 없는 글쓰기, 유통과 실용성이 배제된 글쓰기야말로 시인들을 이 세기의 전위로 만든다.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고 앞으로 나가기만을 열망하는 세계정신 앞에서 시 쓰기는 아무도 목표하지 않는 그리고 아무것도 계몽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위에 이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32
거대한 역사의 기류에 떠밀리던 한 인간의 삶과 문학이 미래의 타인에게 해석될 때, 미래의 타인은 자주 오독을 한다. 시인의 삶이든 그 누구의 삶이든 <인간극장>같은 다큐멘터리의 범주에서 해석되지 않는다. 문학을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무수한 눈에는 한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위장된 저속한 흑백 논리에 근거한 도덕적인 판단이 숨어 있다. 무수한 문학평론가가 아도르노의 권위에 기대어 하이네를 읽기도 전에 그를 단죄하는 걸 보면서 그건 하이네라는 상처가 아니라 하이네, 라는 한 시인의 후대를 살면서 엄청난 비극을 겪은 이십 세기의 상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낭만이라는 지난한 착각 앞에서 쉽게 이성의 품을 찾았던 이들에게 나는 그들의 지난밤 꿈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지난밤의 꿈은 우리가 낮 동안 입을 닫았던 동경의 곡진한 눈물일 수도 있다. 그건 우리들이 통제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인간이기에 감수해야 하는 조건의 영역 속에 있다. 41-2
하긴 많은 좋은 시는 고아의 시다. 아버지 없는 시들이 시 역사를 처참하게, 혹은 아름답게 만든 예를 우리는 기억한다. 시라는 것은 어쩌면 마음의 혁명을 조용히, 온전하게 치러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49
그는 인류의 먼 기억을 찾기 위해 이 세계의 어떤 오지도 마다하지 않고 발굴을 떠나곤 하던 고고학자였다. 인류의 먼 기억은 멀어서 이미 학문 안으로 들어와 있으므로 그것을 찾는 일은 안전하나, 자신의 가장 가까운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은 위험하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즉 자신의 사적인 기억은 그 누구에게도 학문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폐허에 남겨진 타인들의 기억을 찾아 기록하면서 그 친구는 아버지를 위한 제사의 불가능함은 왜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61-2
서자여서 울분에 가득 찬 아버지는 여자라서 제사에 절조차 못하는 여자들의 울분은 잘 몰랐다. 66
먹이가 되어 밥상에 올려진 소를 기리기 위해 이렇게 말을 길게 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윤리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붉은 살점을 보면서 소의 장소들은 소와 함께 소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옛 고향의 모습, 한 두가지는 지니고 있다. 아마도 내가 그곳을 떠났을 때 함께 가지고 간 것이리라. 그렇게 장소도 장소를 떠난다. 장소를 내면화한 인간과 함꼐 그 인간의 시간과 함께. 80
내 꿈에 나타난 폐허 도시는 이 세상에 있는 장소가 아니라 내 꿈에서만 존재하는 장소였다. 수많은 폐허 도시가 모여 새로운 폐허 도시로 내 꿈 한 언저리에 엎드리고 있는 꿈의 도시들. 그러니 이슬람 국가의 테러리스트들이여, 그대들은 아무것도 부수지 못했다. 장소는 그곳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와 함께 그곳을 떠나버렸고 장소가 남겨놓은 수많은 유물은 이미 장소의 것이 아니므로. 부수어라, 그 무엇도 사실은 폭력으로 부수어지지 않음을 우리가 똑바로 볼 수 있도록. 81-2
들어오는 난민과 정주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는 안간힘을 쓰면서 이 둘을 끌어안으려고 하지만 '낯선 이'에 대한 경계, 혹은 공포는 인류를 거대한 전쟁으로 몰아넣지 않았는가. 집시가 들어오면 전염병이 돌고 그들이 마당에 널린 빨래와 아이들을 훔친다는 속설, 난민으로 들어온 타 종교를 가진 젊은 남자들이 이곳에서 자란 젊은 아가씨들을 빼앗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경계, 일자리, 교육을 받을 자리가 적어지며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걱정 등등 앞에서 정치는 무력하고, 잊었다고 믿고 있던 수많은 편견이 다시 사회의 수면으로 떠올랐다. 90-1
꽃이 왜 예쁜지에 대해서 시인의 언어보다는 식물학자의 설명이 더 납득되는 이 논리적인 세계 앞에서 무작정 항복하는 것. 그런데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설명할 수 없는 것 그 너머에는? 104
착각이다. 착각 속에서 작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크게 보이는 것도 없다. 착각의 영상은 유영이다. 부유하는 기억. 그 가운데 착각은 말한다. 나, 여기에 있었다고. 숨죽이며 그러나 떠돌며 그러나, 내가 있는 곳은 여기, 인식론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존재의 가장자리, 기억(혹은 시간의 흐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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