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stri.destride 2021. 1. 1. 19:36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가능성이란 없었다. 사소한 불장난, 몇 번의 킬킬대는 웃음, 잠깐의 당혹감, 그러고 나서 처음 짓게 되는 낯설고 침착한 표정. 다시금 찌들린 집안 살림이 시작되고 첫아이가 태어난다. 부엌에서 바쁘게 일한 후 잠깐 사람들 틈에 끼지만 여자들의 말은 처음부터 누구나 건성으로 들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여자들 자신도 점점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게 되고 한자말이나 중얼거리게 된다. 나중엔 두 다리로 서는 게 불편해지고, 혈관 경련이 오고, 잠자면서 중얼대기 시작하고, 자궁암에 걸리고, 드디어 죽게 되면 예정된 섭리는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을의 여자 아이들이 많이들 하고 노는 말잇기 놀이도 <피곤하고/기진하고/병들고/죽어가고/죽고> 라는 식으로 여자의 삶을 나타냈다. 17

 

다른 사람들은 모범을 보이느라 나름대로 주어진 삶을 살았다. 그들은 보라는 듯이 적게 먹었고, 보라는 듯이 서로의 앞에서 침묵했으며 집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상기시키기 위해 고해 성사를 하러 갔다. 30

 

그러나 그녀는 정치가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부터 결코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호의에서 자신의 한 표를 던졌던 것이다. <사회당은 노동자를 위해 더 많이 일하지> 그러나 그녀 자신은 노동자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집안 살림에 시간을 덜 빼앗기게 됨에 따라 그녀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의미했던 최대 관심사는 그녀가 알고 있는 사회주의의 제도 속에는 없었다. 꿈속에서나 출구를 찾을 만큼 억압되어 있었던 섹스에 대한 혐오감과 안개로 축축해진 침대 시트, 꾀죄죄한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쓴 채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의 생각에는 잘못이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 그리고 어떤 정치가가 그녀에게 그걸 설명해줄 수 있었을까? 또 어떤 말로? 60-61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남자는 여기서, 그리고 나중에라도, 이미 씌어진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 아이의 모든 이야기에 언제나 부합될 어떤 시인의 문장을 깊이 생각한다. 바로 <칸틸레네-사랑과 모든 열정적인 행복이 충만하길>라는 문장을.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