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에 대한 소설인 줄 알았는데 게이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는 감동적인 구절이라곤 딱히 없어서 인기가 없었던 듯도 싶은데... 나는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동성애자들이 겪는 모순, 번민, 착각 이런 것들이 아주 잘 드러나있어서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하나...
동성애자도 똑같은 사랑을 하니까 이성애자랑 똑같은 권리를 달라는 류의 말은 어떤 법제도적 권리를 쟁취하는데에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정상성이라는 인식체계를 뒤흔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에겐 그닥 매력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권리 없음이 부당함의 상황인건 맞으니까 결혼제도의 다양화를 가져가는건 필요하겠지만 굳이 동성혼인법이 아니더라도 생활동반자법이나 시민결합법 같은 형태로 가져갈 수 있지 않나 그런 고민을 하긴 한다.... 90년대생 프랑스 게이 작가의 글인데, 일반 소설과는 다르게 사회학적 분석적 서술이 가끔 눈에 띄는데, 그런 점이 오히려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점일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소수자들은 오토그래프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은데.... 홍보가 많이 안 되어서 안타까움,, 20대 초반에서 주로 나타나는 격렬한 증오와 분노의 에너지가 넘치는 책이라서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았다.
사람들이 내게 그런 말을 한 게 처음이 아닌데도 내 몸을 꿰뚫은 건 바로 경악이었다. 어찌해도 모욕에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무력과 균형 상실의 느낌. 나는 웃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폭발하며 심장의 리듬에 맞춰서 내 안에서 펄떡이던 그 말. 호모 새끼. 17
내가 유일한 관객이었던 이런 공연들이 그 시절에는 내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볼거리였다. 내 눈에 비친 내가 너무 멋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심장은 어찌나 빠르게 뛰는지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옷을 입고 방 안을 누비던 환희에 찬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자애들의 옷을 걸침으로써 더럽혀졌고 바보 같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역겹고 여장으로 나를 몰아갔던 그런 광기의 엄습에 끝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는 급작스러운 느낌에 시달렸다. 33
나는 아버지가 눈을 깔뜨며 거짓말을 웅얼대는 모습을 봤다. 오, 요즘 좀 아프네. 더불어 그 순간, 나는 자기 부모가 공개적으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부딪히게 된 아이를 꿰뚫고 지나가기 마련인, 마치 세사잉 그 모든 토대와 의미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설명할 길 없는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는 술통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만회를 해보려고 애썼다. 37
큰형은 그 사실을 몰랐지만, 나는 루디가 학교에서 얻어맞지를 바라지 않았고 걔를 이성애자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루디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쉬지 않고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을 좋아하는 법임을, 심지어 때로 동성애는 혐오스럽고, 완전 역겨운 그 무엇이어서 저주와 지옥과 질병으로 이어지게 됨을 루디에게 쉬지 않고 되뇌어 줬다. 64
그러니까 자주 화를 내는 여자였다. 기회만 왔다 하면 항의를 했다. 하루 종일토록 정치인들과 복지 수당을 축소하는 개혁에 대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증오하는 공권력에 대해 항의한다. 하지만 엄벌이 문제로 떠오르면, 아랍인이나 술, 마약, 본인이 판단하기에 문란하다 싶은 성적 행동에 대한 엄벌이 문제가 되면 공권력을 열렬히 원한다. 어머니는 종종 말한다. 이 나라에는 질서가 좀 필요하지. 76
몸놀림, 여자 같은 이란 말들이 내 주위에서 어른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중학교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고, 그 두 소년으로부터만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 말들은 면도날과 같아서 그런 말이 들리면 그 말들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나를 갈기갈기 찢어 댔고, 그 말들을 물릴 때까지 곱씹었다. 나는 그들이 옳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는 변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모욕적인 말이 기승을 부렸다. 몸놀림이니 여자같은이니 하는 말들을 입에 올리는 마을 어른들이 늘 욕설 특유의 억양에 그런 말을 실어서 모욕 주듯 말했던 건 아니다. 그들은 때로 놀라워하며 그 말을 입에 올렸다. 106-7
그러니까, 그래서 그 이야기를 안 하는 거야. 네 아버지는. 남부에서 살 때의 얘기 말이야. 어쨌든 그건 이상하잖니, 앞뒤도 안 맞고. 그러니까 깜둥이들은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남부에서 살 땐 가장 친한 친구가 깜둥이였던 거잖니. 널 붙들고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말이야, 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인종주의자인지 이해를 못 하겠어서 그래. 난 인종주의자는 아니거든. 알바인들과 흑인들이 권리를 다 누리면서 나랏돈을 전부 가져가버린다는 건 사실이긴 해. 하지만 그래도 네 아버지처럼 그 사람들을 죽이든가 목을 매달든가 아니면 강제 수용소에 집어넣기를 바라지는 않아, 난. 154
검사가 그에게 으레 던지는 질문들을 던졌다.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왜 그런 식으로 했는가. 그의 과거와 아이들과 사생활에 관한 질문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버지와 당신을 버린 어머니, 이 모든 것이, 삶의 이 모든 요소들이 범법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언어 때문에, 법조계의 언어이어서만이 아니라 배움이 일상인 세계의 언어라서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질문들.
피고인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들이 외적 제약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십니까? 아니면 이 사건에서 오직 당신의 자유 의지만이 문제였다고 여기십니까? 사촌은 더듬거리며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대답하고는 질문을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거북하지 않았고 검사가 행사하는 폭력을 직접 느끼지도 못했다. 그를 학업의 세계로부터 내몬 계급의 폭력,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원인과 결과의 작용으로 마침내 그를 여기까지, 법정으로까지 몰고 온 이 폭력. 그는 오히려 검사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나 보다. 호모 새끼처럼 말한다고. 183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 왜 자기들과 함께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두 들으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브뤼노가 갖고 왔던 동영상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런 짓에 열 올릴 생각 없고, 그런 짓은 역겹고, 한 놈도 빠짐없이 홀라당 벗고서 그러고 있는 너희들을 보니 그런 행동이야말로 진정 호모 새끼들의 짓거리가 아닌가 싶다고 대꾸했다. 사실 그 살덩어리들은 현기증을 안겨 주었다. 나는 그들을 나로부터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기 위해 호모새끼, 톳쟁이, 비역쟁이 라는 말들을 사용했다. 타인이 내 육체의 공간을 그만 침범하라고 그런 말을 하기.
논리적으로 따져 보자면 스테판도 호모 새끼 취급을 받아야 했다. 죄악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이다. 특히 겉모습이다.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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