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크라우스, 아이 러브 딕

stri.destride 2021. 1. 3. 19:18

 

흥미진진 페미니즘 이성애 소설..

주인공 크리스가 딕에게 빠졌던건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고, 하지만 너무 예견된 비극. 딕같이 이꼴저꼴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 크리스같이 자의식 강한 사람을 좋아할리는 없으니까. 크리스가 여성이라서 많은 기회를 박탈당한 것은 맞을지 몰라도, 자의식과 인정욕구가 동시에 강한 사람은 나도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어쨌든 소설은 무척 재밌음. 사실 이 소설은 딕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는게 주가 아니라 ..그러니까 중요한건 딕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문제를 중층적으로 해석하는 그 작업 자체가 요지일텐데, 책이 나오자마자 나왔던 기사는 그래서 딕은 실제로 누구를 가리킨다..이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어휴. 

그러나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그저 이 합작을 즐기고 있는 실베르는 그들이 그에게 끝없이 편지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46

 

딕 , 우린 왜 이렇게 우리의 삶을 따분해 할까요? 어제 우리는 내년 여름엔 이 집을 다시 빌리지 않기로 결정했답니다. 당신이 사는 도시의 끝자락에 집을 빌리면 어떨까요? 

당신이 이런 기운을 유도하는 건가요? 우리가 사람들 집에 들어가 작은 부적 같은 물건들, 일테면 콘돔 한 상자나 치즈 나이프 따위를 훔치는 그 유명한 도둑 같은 걸까요?96

 

6천5백 킬로미터 떨어진 트레비즈 가에선 실베르 로트링제가 어머니와 함께 앉아 홀로코스트를 회상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조그만 부엌에서 게필테 피시와 카샤, 채소 볶음, 루겔라흐를 차려준다. 우스운 광경이다. 쉰여섯 살 먹은 사내가 아이처럼 앉아 여든다섯 노모의 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베르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134-5

 

크리스는 늘 팸을, 그녀의 삶과 취미와 예술적 포부를 좋아하고 동경했다. 술을 마시면서 팸은 자기가 크리스의 영화를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그 영화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크리스는 자신의 외모나 성격을 통틀어 대체 어떤 점 때문에 사람들이 대놓고 그런 얘기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감정이 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155

 

크리스는 분명 지적이었지만, 심지어 보기 드물게 소양이 넘쳤지만, 실베르는 똑똑한 남자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그는 뉴욕 사람들을 전부 알았으므로 그중에서 누군가를 고를 수도 있었다. 그들이 만난 그 해에 실베르는 그녀와 거리를 유지한 채 좀처럼 함께 밤을 보내자고 청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점심시간의 짧은 섹스였고, 그러고 나선 현실과 동떨어진 철학적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런 이야기는 늘 그녀를 내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기해 여름 데이비드 래트레이가 그에게 전화해 크리스가 미니애폴리스의 어느 병원에 있다고 일렀다. 그제야 실베르는 크리스의 병이 자신과 연관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녀를 받아들이면 그녀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된 것이었다. 어쨋든 크리스도 한 가지는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머드 클럽에서 변태적인 섹스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실베르가 사실은 인도주의자였음을. 가학피학성 변태성욕보다는 죄책감과 의무감이 그의 삶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164-5

 

그녀가 소리쳤다. "크리스 크라우스가 누구야? 그 여잔 아무도 아니야! 실베르 로트링제의 아내지! 그의 '추가 1인'일 뿐이라고!" 그녀가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든 또 몇 권의 책을 편집했든 실베르와 함께 사는 한 아무도 아닌 존재로 비칠 게 분명했다. "내 잘못이 아니잖아!" 실베르도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 작업할 때 그녀의 이름은 늘 빠져 있었다는 것을. 실베르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아이를 유산한 일, 명절 때 실베르가 자기 딸과 단둘이 지낼 수 있게 집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한 일도 그녀는 잊지 않았다. 10년 사이에 그녀는 자신을 지웠다. 실베르는 아무리 다정했어도 그녀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178

 

10년 전 실베르를 사랑하게 된 뒤론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죠. 그땐 엉망이었답니다. 그런 기분이 제대로 표현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거든요. 난 다른 수를 써야 했죠. 일테면 아주 지적이고 쓸모 있는 여자가 되어야 했어요. 

지금 (다른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나의 개인적인 목표는 내 감정을 가급적 분명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 사랑은 글쓰기와 똑같아요. 정확성과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우 강화된 상태로 살게 된다는 그렇죠. 물론 이건 어디에든 적용할 수 있어요. 이런 감정은 조롱당하거나 거부당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는데, 난 위험을 처음 '알게'된 것 같네요. 196

 

실베르는 내가 당신과 관련해 겪고 있는 이 상황을 끊임없이 사회화하려 들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이름 붙이려 하죠. "학계의 간통"이라느니 "존 업다이크, 마리보를 만나다"라느니... "교수의 아내, 남편의 동료에게 자신을 내던지다"라느니, 여자와 욕망이 본질적으로 기괴한 무엇, 대놓고 말해선 안 되는 무엇을 갖고 있음을 상정하는 셈이죠. 하지만 내가 당신 때문에 겪는 이 상황은 실제이고 처음 일어나는 일이에요. 209-10

 

앤 로어는 이렇게 말한다. "실시간으로 글을 쓰면 수없이 고쳐야 해." 진실을 쓰려 할 때마다 끊임없이 모종의 변화가 가해진다는 뜻일 것이다. 또 다른 일들이 일어나니까. 정보가 끊임없이 팽창하니까. 213

 

수없이 빈곤을 목격하곤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을 누리기 위해선 사람들이 굶주려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은 사람을 미치게 하죠. 그로 인해 제니퍼는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어요.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게 기껏해야 종속적인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읨히ㅏ던 시절이었죠. 많은 여성들은 법인법 분야에 취직해 자립을 모색하려 했어요. 하지만 나쁜 페미니스트인 제니퍼는 텍사스 동부의 한 법률구조 사무실에서 이민자들을 변호하는 일을 맡았답니다. 의뢰인 가운데 상당수가 국외 추방 위기에 놓인 과테말라 마야인들이었어요. 225-6

 

딕, 1970년대 여성 경험을 이야기하는 행위는 왜 하나같이 '공동작업'과 '페미니즘'으로만 읽히는지 모르겠어요. 취리히 다다이스트들도 협업했지만 그들은 천재들이었고 제각기 이름이 있잖아요. 231

 

예전에 스트립바에서 변호사들을 만났을 때, 내가 탁자 앞에 마주 앉아 다리를 벌린 채 불교 설화를 들려주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얼굴과 흡사하더군요. '참 묘한 장면이군' 하는 얼굴. 그들은 즐거워했을까요? 자기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가늠하고 있었을까요? 237

 

모든 섹스의 행위가 수모였어요. 당장 기억나는 대로 얘기해 보면, 이스트 11번가, 머리 그로먼과 침대에 누웠을 때: "이 끝내주는 녀석을 숨 막힐때까지 삼켜봐." 이스트 11번가, 게리 베커와 침대에 누웠을 때: "네 문제는 너무 천박하다느 ㄴ거야." 이스트 11번가, 피터 바우만과 벽에 기대어: "너랑 할 땐 네가 창녀라고 생각해야 흥분이 된다니까." 2번 애비뉴, 부엌, 마이클 웨인라이트: "솔직히 난 좀 더 예쁘고 학벌 좋은 여자를 만나야지." 이 진지한 청년 여성(짧은 머리칼, 굽 낮은 신발, 조금 굽은 등, 지금껏 읽은 책들을 생각하느라 바쁜 머릿속)을 어떻게 대하나요? 때리고 따먹고 사내처럼 대하죠. 그 진지한 청년 여성은 어디서든 섹스의 기회를 찾았지만 손에 넣은 섹스는 결국 붕괴의 활동이 되었어요. 이 남자들은 왜 그랬을까요? 그녀가 증오를 불러일으킨 탓일까요? 그 진지한 청년 여성을 여인으로 만들기 위한 모종의 도전이었던걸까요? 279-80

 

키타이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주해'를 만드는 일, 즉 그림 하나하나에 부연의 글을 쓰는 일에 집착한다는 점이 내겐 무척 즐겁게 느껴졌답니다. '주해'라는 건, 미친 사람이 자기가 미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는 일이죠. '주해'는 내가 당신에게 나에 대해 해명할 때 사용한 표현이기도 하고요. 내가 말했던가요, 딕? 나는 이 편지들에 카우보이와 유대인 나부랭이 라는 제목을 붙일까 생각하고 있다고요. 294

 

 하지만 재니스 조플린, 시몬 베유처럼 여자가 죽음을 택하면 죽음이 그 사람을 정의하게 되죠. 그 사람의 '문제'가 죽음의 원인이 되고요. 여자로 사는 건 여전히 전적으로 심리적인 작용 안에 갇히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여자가 아무리 크고 냉철한 세계관을 지녀도 그 안에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담겨 있으면 다시 그녀에게로 초점이 맞춰지죠. 감정은 너무나도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세상은 그것을 규율로, 형식으로 삼을 수 있다고 믿으려 하지 않아요. 딕, 나는 세상을 그저 내 문제가 아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따라서 내 문제를 사회적인 것으로 삼아야 하죠.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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