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1,2, 오르한 파묵, 이난아 역, 민음사

stri.destride 2013. 4. 20. 22:26




순수 박물관. 1

저자
오르한 파묵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0-05-3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이 들려주는 처절한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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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2

저자
오르한 파묵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0-05-3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르한 파묵이 들려주는 처절한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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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나는 파묵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파묵은 소설에서 지은 박물관을 실제로 이스탄불에 지었다

당신이란 남자 엄청난 남자...

책 안에 입장권도 있으니까 제가 보러가겠습니다 냉큼 보러가겠습니다!!!



파묵이랑 조이스를 좋아하는데, 누가 너는 왜 파묵과 조이스를 좋아하냐고 묻길래 그때는 대답을 잘 못했다가 그 뒤로 틈틈이 생각해보니, 파묵에겐 '이스탄불'이, 조이스에겐 '더블린'이 그들의 작품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키워드라는 것, 그들은 문장은 길고 긴 수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정도가 있을텐데.. 어쨌든 '실재하는 장소'를 끊임없이 등장시킨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 장소에 대한 긴긴 애정이 없다면 가능하지 못할 이런 묘사들이. 


그리고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핏 보았을 때 기분 나쁠 수도 있을 정도로 남김없이 도시의 속내를 보여준다는 점. 


파묵 소설의 대부분은 배경이 이스탄불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김없이 드러나고, 그곳에서는 서양VS동양의 구도가 끊임없이 드러나고, 서양에 가깝지만 서양은 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함께 드러난다. 그 점이 내게는 한국사회와 비슷해 보이고,- 파묵 또한 '주변과 중심'을 언급하고는 한다- 그래서 더욱 파묵의 소설을 사랑할 수 있는지 모른다. 


파묵의 소설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큰 의미를 지니는 배경이기도 하지만, 그 이스탄불은 16세기가 되기도 하고(내 이름은 빨강) 20세기의 이스탄불이기도 하고(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순수 박물관, 검은 책)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다양하게 펼쳐진다. 순수 박물관에서는 '영화'가 키워드라면, 다른 책에서는 '제브데트 씨 집안의 사업'이 되기도 하고(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그 와중에 그 당시 터키사회와 역사가 불가분으로 개입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엮여서 가닥가닥 빛난다는 점이 파묵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그 안에 소설가 자신을 끼워 넣는 재치와('내 이름은 빨강'의 '오르한'과 '순수 박물관'의 '오르한'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나'를 생각해보라!) 소설간의 인물들이 서로 엮이는 재미(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순수 박물관, 고요한 집)또한 이 작가의 덕질을 놓칠 수 없게 하는 원동력...


이제 소설과 소설가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으니. (!) 


커다란 발코니를 통해 보리수나무 향기가 나는 기분 좋은 봄기운이 들어왔다. 아래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할리치 만을 비추고 있었고, 카슴파샤, 무허가 집들, 가난한 마을조차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내게 아주 행복한 삶이 있으며, 더욱이 이것이 앞으로 경험할 더 큰 행복을 위한 준비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느꼈다. 1권 65쪽


그럼에도 니샨타쉬 출신의 다른 세속적인 부르주아 가족들 처럼 우리 가족도 희생절마다 양을 잡고, 그 양고기를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도, 가족 중 그 누구도 양이나 양을 잡는 일에는 깊이 관심을 갖지 않았고, 고기와 가죽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일도 요리사와 관리인에게 맡겼다. 부모님처럼 나도 명절날 아침마다 옆에 있는 공터에서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던 이 양 잡는 의식에 별 관심이 없었다. 71쪽


우리가 아주 사랑하는 존재에게, 그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우리의 가장 귀중한 것을 준다면, 바로 그때 세상이 아름다워진답니다. 꼬마 아가씨, 그래서 우리는 울었답니다. 77쪽 


문명과 박물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세계를 정복 했던 서양 문명에는 모두 박물관이 있고, 이 박물관을 만든 진정한 수집가가 처음 물건들을 모을 때는 대부분 자신들의 행위가 어디에 이를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진정한 최초의 수집가들은 이후에 전시를 하고 분류하여 목록을 만들(최초의 목록은 최초의 백과사전이다.) 수집품들 중 첫 번째 물건이 그들의 손에 들어왔을 때조차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126쪽


"아, 무슈, 저는 고민 많은 남자와 약혼했답니다." 287쪽


세상과 인생의 모든 것에는 어느 때고 점을 칠 수 있도록 신이 보낸 신호로 가득했다. '처음 지나가는 빨간 자동차가 왼쪽에서 오면 퓌순에게서 소식이 올 것이고, 오른쪽에서 오면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라며, 사트사트 창문 밖을 내다보며 거리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세어 보곤 했다. '배에서 부두로 처음 뛰어내리는 사람이 나라면, 퓌순을 곧 만날 것이다.'라며 아직 밧줄이 던져지기도 전에 부두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밧줄을 던지는 내 등 뒤에서 "처음 뛰어내리는 사람은 바보멍청이다!"라고 소리쳤다. 뱃고동 소리가 들리면 그것을 행운의 신호로 간주하면서 그 배를 상상해 보았다. '육교 계단이 홀수라면 퓌순을 곧 만나게 될거야.'라고 생각했다. 계단이 짝수로 나오면 고통은 커졌지만, 점이 적중하면 한순간이나마 편해졌다. 298-299쪽


"걱정 마라, 일시적인 것이니. 아직 넌 젊어.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에는 아직 일러. 겁내지 마라. 하지만 내 나이가 되어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들이 있다면, 아침까지 별들을 세며 기다리게 되지. 절대 후회할 일은 하지 마라." 아버지가 다정하게 말했다. 300쪽


십팔 분 후에 멜하메트 아파트에 있는 침대에 누워, 빈집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나의 고통을 줄여 보려 했다. 퓌순이 만졌고 그녀를 퓌순이게 한 이 물건들을 만질수록, 그것들을 쓰다듬고, 바라보며 내 목에, 어깨에, 벗은 가슴에, 배에 갖다 댈수록, 물건들은 어떤 위안의 힘이 있는 듯 그 안에 쌓인 기억들을 내 영혼에 풀어 놓았다. 304쪽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건전한 결혼은 이런 폭풍우 같은 불행한 사랑을 잊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315쪽


무게는 약간씩 다르겠지만, 이스탄불의 수백만 명이 반세기동안 이 빵을 주식으로 먹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삶은 반복되지만 결국에는 모두 매정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315쪽



2권


뻔뻔하고 돈 욕심이 많은 배우나 제작자들 - 대부분 펠뤼르의 단골이었다 - 은, '초기 무슬림 포르노 영화'로 기록될 영화들을 찍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섹스와 풍자가 섞여 있었고, 베드신에서는 전형적인 비명 소리를 과장하여 질러댔으며, 유럽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책에서 배운 섹스 체위를 죄다 따라했다. 하지만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숫처녀처럼 절대 팬티는 벗지 않았다. 61쪽


이러한 일이 있고 나서 많은 세월이 흐른 후, 그즈음 퓌순의 토라진 시선이나 다른 의미 있는 시선이 터키 영화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의 시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따라한 것은 아니었다. 터키 영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처럼 퓌순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자들 옆에서 자신의 고민을 완전히 다 설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부논나 희망이나 감정을 그저 시선으로만 표현했던 것이다. 133쪽


그런 순간에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우리 사이에 전기가 흘렀고, 내가 그곳 식탁에 왜 앉아 있는지를 떠올렸으며, 담배를 끄는 것조차 이런 특별한 내적 혼란이 반영되어 이상한 모양이 되었다. 나중에 아주 멀리서,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아주 큰 배의 뱃고동 소리가 나면, 그 배에 탄 사람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나의 삶을 생각했다. 

어떤 밤에는 몇 개를 집어 멜하메트 아파트로 가져갔던 담배꽁초들을 나중에 하나하나 집어 들면, 과거의 '순간'들이 기억났다. 이 담배꽁초들은 내가 모은 모든 물건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순간들과 하나하나 맞아 떨어진 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멜하메트 아파트에 모아 놓은 물건들은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그저 한 번 보기만 해도 퓌순과 나의 과거를, 우리가 저녁때 식탁에 앉아 있던 모습들을 기억하게 한다. 물건들 -사기로 된 소금 통, 개 모양의 재단용 줄자, 무섭게 생긴 통조림 따개, 퓌순네 집 부엌에 언제나 있었던 바타나이 해바라기 유 병-과 함쳐지는 하나하나의 순간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내 기억 속에서 광범위한 시간으로 뻗어나가는 것 같았다. 204-5쪽


페리둔은 파파트야와의 관계를 내게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삶에서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어떤 사건에도 집착하거나 불행해하지 않으며, 언제나 순수하게 남아 있을, 진실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222쪽


내가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먼 곳에서 그 순간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몸이 다른 사람의 몸이 되어 연극 무대에 올라 현재를 살고 있으면, 나는 약간 떨어져서 나 자신과 퓌순을 바라보았다. 내 몸은 오늘 이 순간에 있었지만, 내 정신은 먼 곳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그 순간은 내가 기억하는 순간이었다. 순수 박물관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내가 전시한 단추, 컵, 퓌순의 빗, 옛날 사진 같은 물건들을 볼 때, 지금 앞에 놓인 물건이 아니라 나의 추억인 듯 봐야만 한다. 240쪽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보스포루스 물을 바라보며 "수영복을 가져왔으면 좋았을걸!"하고 말했다.

퓌순은 다음번에 올 때 꽃무늬 옷 안에 푸른색 비키니(여기에 전시했다)를 입었다. 운전 연습이 끝나고 타라비야 해변에 갔고, 그녀는 부두에서 바다로 뛰어들기 직전에 옷을 벗었다. 팔 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아름다운 연인의 몸을 무척 부끄러운 시선으로 한 순간 바라보았을 뿐이다. 퓌순은 내게서 도망치듯 바다로 뛰얻르었다. 그때 그녀가 튀긴 물, 거품, 멋진 빛, 군청색의 보스포루스, 비키니, 이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절대 잊히지 않는 어떤 이미지, 어떤 감정을 만들어 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 이런 멋진 감정과 행복한 색깔을 오래된 사진과 엽서에서, 이스탄불의 고뇌에 찬 수집가들을 만나 찾아보려고 나는 몇 년 동안이나 헤매고 다녔다. 261-262쪽


어떤 버스가 상향등 불빛을 쏘아 대며 지나갈 때, 나는 퓌순의 표정 - 그리고 그녀의 매력적이고 달콤한 입술- 을 보고 그녀의 생각이 아주 먼 곳으로 흘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의 불빛이 사라지고서도 한동안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눈 퓌순의 배에 입을 맞추었다. 때때로 길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럴 때면 아ㅜㅈ 가까운 곳에서 울어 대는 매미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들려온 것은 개구리가 우는 소리였던가, 아니면 세상의 가녀린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였던가, 풀이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소리였던가, 땅속에서 들려오는 깊고 조용한 울림이었던가, 생활 속에서는 인지하지 못했던 자연의 희미한 숨소리였던가? 328-9쪽


하지만 베를린에 있는 물건 박물관은 나에게 다른 방식으로 이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즉, 정반대의 것도 옳을 수 있다는 것, 감각과 위트가 있으면 무엇이든 모을 가치가 있다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야 한다는 것, 제대로 된 건물이나 박물관이 없더라도 우리가 모은 수집품들의 시가 바로 그 물건들의 집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