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출산, 결혼 이런데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법한 책. 50년전 캐나다나 현재 한국이나 별 다를바가 없구만.. 모성 신화에 대한 생동감있는 서술들, 여전히 평면적이고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남자들의 모습 등이 꽤나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간만에 읽고나서 재밌는 이야기를 읽었다는 뿌듯함이 많이 느껴지는 책이어서 좋았다. 삶에 있어서 선택을 할 때에는, 특히나 관계에 있어서는 "이 사람 정도면 괜찮지.."같은 체념의 정서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걸 말해주는 점이 좋았다. 혼자 살면 어떻니 인간들아..제발 내 연애 사정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아다오.
시장조사는 손뜨개 양말 회사 같은 가내수공업과 비슷해서 가정주부들이 남는 시간에 일하고 건당 보수를 받는다. 벌이는 많지 않지만 그들은 집 밖으로 나올수 있기에 좋아한다. 설문에 응하는 사람들은 보수를 전혀 받지 못한다. 나는 가끔 그들이 설문에 응하는 이유가 궁금해질 떄가 있다. 집에서 쓰는 제품을 개선하느 ㄴ데 과학자처럼 이바지할 수 있다는 과대 포장 때문일까. 아니면 대화 상대가 생겨서 좋은걸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자기 의견을 물어봐주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 싶다. 29
클래라가 아이를 흔들었다. "너 이 오줌싸개." 그녀가 달래는 투로 말했다. "엄마 친구한테 오줌을 싸다니. 빨면 지워져요, 에인슬리. 하지만 이렇게 더운데 방수 팬티를 입힐 수는 없잖아. 그치, 냄새나는 우리 분수대? 모성 본능 어쩌고 하는 말은 믿지 말아요." 그녀가 험상궂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람 구실 하기전에는 애들을 무슨 수로 사랑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49
그가 손가락으로 내 목덜미 머리칼을 돌돌 말았다. "당신 기모노 입으면 잘 어울릴 거야." 그는 이렇게 속삭이고 내 어깨를 꺠물었다. 대책없이 들떴다는 신호였다. 그는 원래 잘 깨물지 않는다.
나는 화답하는 뜻에서 그의 어깨를 깨물고 레버가 계속 샤워기 쪽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날렵한 오른발을 뻗어 찬물을 틀었다. 89
"뭐 하나 나무랄 데 없었던 저녁을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망쳐놨는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네." 그는 내가 한 말을 무시했다. 천둥이 쩍 하고 하늘을 갈랐다.
"당신은 별 상관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말해싿. "당신은 충분히 재밌게 즐겼잖아."
"아, 그거로군. 우리가 재미있게 놀아주지 않아서. 재미없는 대화만 늘어놓으면서 당신한테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그래, 다음번에는 누칭 ㅓㅄ게 당신 부르지 말고 우리끼리 만날게."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발언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렌은 내 친구였다. "렌은 내 친구야" 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영국에 있다가 얼마 전에 온 친구랑 대화좀 나누겠다는데 안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
"에인슬리는 얌전히 있었는데 당신은 왜 그랬어? 당신은 뭐가 문제인가 하면." 그는 매정하게 말했다. "당신에게 주어진 여성성을 거부하고 있다는거야."
그가 에인슬리를 칭찬한 것이 가증스러운 기폭제였다. "여성성은 무슨 '얼어죽을'여성성이야." 나는 고함을 질렀다. "여성성이 무슨 상관이냐고. 당신은 그냥 매너 없는 인간이었을 뿐이야!" 113
그런데 내가 이게 누구 목소리인가 싶은 여리고 불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당신 결정에 따를게. 중요한 결정은 당신한테 맡기고 싶어." 나는 지금까지 이 비슷한 말을 그에게 한 적이 없었다. 재밌는 건 진심이었다는 뜻이다. 127
렌은 점점 발끈하며 부아를 내고 있었다. "글쎄, 나는 뭐 그리 행복하지 않은데." 그가 불쑥 내뱉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나를 이용하려는 생각뿐이었어. 당신을 귀엽고 순진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지. 사실은 대학까지 나왓는데! 여자들은 다 똑같아. 당신은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었어. 나한테서 원한 게 내 몸뿐이었어!"
"당신은 나한테서 뭘 원했는데?" 에인슬리가 달콤하게 물었다. "아무튼 내가 가져간 건 그것뿐이야. 나머지는 당신이 다 가져도 돼. 그리고 지금처럼 계속 마음의 평화를 만끽해도 돼, 내가 친자확인소송으로 협박할 일은 없으니까."
(...)"마음의 평화? 하 그게 되겠어/ 당신이 나를 끌어들였잖아. 나를 심리적으로 끌어들였다고. 나는 앞으로 아이 아빠로 살아야 해. 이게 다 너 때문에 벌어진 망측한 일이야." 그는 헉하고 숨을 토했다. 그로서는 처음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네가 날 유혹했어!" 그는 그녀를 향해 맥주병을 흔들었다. "나는 앞으로 출산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심리적으로 복잡해질 거야. 생식도. 잉태도. 그게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어? 그 추접스럽고 끔찍하도록 축축하고..." 221
메리언은 자신이 이른바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용당하는 이유를 아는 한 상관 없었다. 의식 선상에서 최대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됐다. 물론 덩컨이 그녀에게 시간과 관심을 이른바 '요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떤 정신적인 보답으로 그녀에게 부담을 안기지는 않았다. 그의 완벽한 이기주의가 신기하게 위안이 됐다. 때문에 그가 입술로 뺨을 간질이며 "있잖아요, 나는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라고 말했을 때에도 대답할 필요가 없었기에 심란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터가 거의 같은 위치에 입을 대고 "사랑해'라고 속삭이고 메아리 반응을 기다리면 그녀는 있는 힘껏 노력해야 했다. 254
"클래라의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다른 여자들보다 많이 힘들 거예요. 대학 생활을 했던 여자라면 다 그렇게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지성이라는 게 있었고, 교수님들은 그녀가 하는 말에 관심을 기울였고, 생각할 줄 아는 인간으로 대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코어를 침범당해서.."
"뭐를 침범당해요?" 메리언은 물었다.
"코어. 그녀가 지금까지 건설한 인격의 중심요. 자기 이미지라고 할까요."
"아, 네" 메리언은 말했다.
(...)
"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코어를 장악당하도록 허락하죠. 게다가 아이들까지 태어났으니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요. 안이 텅 비어서 자기가 누군지 더는 알 수가 없고요. 코어가 파괴돼버렸으니 말이에요." 325
"나한테 묻지 말아요. 그건 당신 문제니까. 뭔가 조치를 취해ㅣ야 할 것처럼 봉기ㅣㄴ 하네요. 진공 상태에서 자해를 계속하다 보면 좀 재미없어지거든요. 하지만 그건 당신이 만든 당시남ㄴ의 막다른 골목이니까 나갈 방법도 당신이 생각해야 할 거예요." 그는 일어섰다.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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