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짓도 하지 않을거라면 와도 괜찮아."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구마 짱 귓가에 속삭이면서 누군가와 함께 잠이 들 때의 건전한 따뜻함을 얼핏 떠올리고 있었다. 13-14
그런 조건을 내세운 건 고타와 연락이 끊어지는게 싫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18
"난 어른이 아니니까, 아이같은 상태에서 변하지 않을테니까, 그게 나니까 너한테 폐를 끼쳤어. 잊어줘, 나를."
아무래도 이 사람과 보냈던 그 눈부신 시간은 사라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지만 소노코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소노코는 그런 건 교활하다고 잊으라는 말을 쉽게 하지 말라고 더욱 격하게 주절주절 쏘아붙였다. 구마 짱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41
평범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나를 절대로 쓸모없게 만들지 않아. 그런 나날의 앞에 나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할 거라고 깨달은 지금은 너를 이해할 수 있어. 49
바다를 어루만지듯 부는 바람은 습기를 머금어 따스했다. 흩날리는 벚꽃잎 속에서 달리거나 뛰어오르는 빨간 멜빵 가방 두 개를 오랫동안바라보고 싶다고 마키히토는 생각했다. 아름답다는 말은 몰랐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말가 같다는 생각이 별안간 들었다.누나 몸에 부딪혀서 넘어진 마키히토가 울었다. 사요리가 웅ㅡㅋ,ㄹ;고 앉아 자신이 손에 넣은 벚꽃잎을 나눠주었다.흩날리고 있을 때는 깃털처럼 하얀 꽃잎이 손바닥 안에서는 쪼글쪼글한 종잇조각처럼 되어 있었다. 마키히토는 사요리가 보지 못하도록 꽃잎을 버리고 벌떡 일어나서 달렸다. 하늘은 잿빛이고 생선 비린내가 풍기고 가드레일이 무척이나 하얗게 보였다. 190
옛 애인에게 돌아간다며 차였을 때는 내릴 역을 늘 놓쳤다. 멍하니 생각하다 보면 안내 방송에서 귀에 익지 않은 역명을 알려주고 있었다. 상행선과 하행선을 착각해서 잘못 타놓고 깨닫지 못한 채 낯선 동네로 이동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 고즈에는 알았다. 나는 지금 평범한 정신 상태가 아니구나. 내 안에서 뭔가가 망가져버렸구나.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고즈에는 자신을 타일렀다. 괜찮아. 괜찮아. 망가졌지만 금세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니 괜찮아, 하고 낯선 역 승강장에서반쯤 자포자기 하는 기분으로 메밀국수를 선 채로 먹으면서 생각했다.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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