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가쿠타 미쓰요

stri.destride 2018. 3. 5. 16:10



아마도 그녀들이 지니고 있는 선천적인 기질이라기보다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형성된 후천적인 것일 게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의문을 품지 않으며 자기 주장이 없다. 주체성이 없기 때문에 악의나 미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희박하다. 124


이제부터 내가 너에게 전부 다 줄게. 지금까지 빼앗았던 것들을 전부 돌려줄게. 바다도, 산도, 봄에 피는 꽃도 겨울의 눈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코끼리도,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개도. 슬픈 동화도, 탄식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도. 145-6


기시다씨는 나를 보고 난감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가 잘못한 게 아니면 사과 안 해도 돼." 나는 식사를 하면서 기시다 씨가 한 그 말으 ㄹ곱씹어 생각했다. 자기가 잘못한 게 아니면. 이 말이 마치 주문 같았다.갇혀 있던 장소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주문 같았다. 247


그때부터 나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그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 줄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뿐이라고. 숨이 막힐 듯 갑갑한 공기, 지뢰처럼 건드려서는 안 되는 터부가 있는 집,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치밀어오르는 기억, 아빠의 침묵과 엄마의 불안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데리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287


병원에 알아보러 갔을때도 그 자리에서 수술날짜를 잡을 생각이었어요. 그랬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거에요. 아이가 태어날 때쯤에는 신록이 틀림없이 아름다울거라고. 그 순간 웬일인지 눈앞에 환해지면서 풍경이 보였어요. 바다, 하늘, 구름, 빛, 나무, 꽃, 예쁜 것들은 다 있었어. 드넓고 확 트인 풍경이었어요. 그런 풍경은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런 새각이 들더라고요. 나에게는 이 풍경을 뱃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보여 줄 의무가 있다고. 바다랑 나무랑 빛이랑, 예쁜 것들을 많이 보여줘야 한다고. 내가 본 건 물론이고 보지 못한 것까지 다.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