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는 법.
"이 몸은 크고 작은 전투를 수십 차례나 치렀어.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하지. '이 몸은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거다. 총알이 내 몸의 어느 곳을 스쳐도 나를 다치게 하지는 못한다'고 말이야. 춘성, 스스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죽지 않아." 96
"중대장, 장 위원장이 우리를 구하러 올까요?"
중대장이 고개를 돌려 말하더군
"멍청한 놈아! 지금은 네 어미도 널 구하러 올 수 없더. 제 목숨은 제가 구해야 한다고."
한 노병이 그에게 총을 쏘았는데 맞지는 않았어. 중대장은 총알이 자기한테 날아드는 소리를 듣자 지난날의 위풍은 다 어디로 갔는지, '걸음아 날 살려라' 미친 듯이 도망치더군. 이어서 여러 명이 총을 꺼내들고 쏘아대자, 그는 아우성을 치며 이리저리 날뛰더니 곧 눈밭 속으로 숨어 멀리 달아났다네. 100
룽얼이 그렇게 죽고 나니,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뒷목이 서늘하더군.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한 기분이었다네. 옛날에 아버지와 내가 집안을 말아먹지 않았다면 그날 사형당할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겠나. 문득 내 얼굴을 문질러보고 팔도 만졉왔지. 다행히 다 그대로더군.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엇다네. 난 전쟁터에서도 목숨을 건졌고, 집에 돌아와서는 룽얼이 나 대신 죽었으니 말일세. 우리 집안이 조상 묘를 잘 쓴 모양이야. 어쩄거나 난 나 자신에게 말했지.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야지." 111
그날 저녁 나와 자전은 둘 다 편히 잠들지 못했다네. 자전이 성 안의 풍수 선생을 알지 못했다면, 우리 식구가 어딘가로 가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생각해보니 그것도 다 운명이더구먼. 다만, 그 쓰디쓴 운명을 쑨 선생이 당한 것뿐이지. 자전은 우리가 쑨선생한테 재앙을 밀어낸 거라고 여겼다네. 나도 그랬고 말이야. 하지만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네.
"재앙이 그를 찾아간 거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밀어낸 거라 할 수는 없소." 138-9
"사람은 이 네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서는 안 되며, 문간은 잘못 밟으면 안 되고, 주머니는 잘못 만지면 안 되는 거야."
푸구이 노인은 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고개를 돌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둘째 원칙을 잊은거야. 알겠나? 잠자리를 잘못 찾은 거라구." 200
마을은 성안에 비하면 훨씬 태평했고 예전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밤에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게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었지. 마오 주석의 최신 지시는 꼭 한밤중에야 내려왔거든. 그러면 대장은 곡식 말리는 곳에 서서 죽을 힘을 다해 호루라기를 불었지.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으로 방송을 들으러 갔다네. 가보면 대장이 고함을 치고 있었지.
"모두 이리 와서 마오 주석의 훈화를 들으시오."
우리는 평범한 백성들이었지. 나라 일에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네. 우리는 모두 대장의 말을 들었고, 대장은 상부의 말을 들었지. 상부에서 뭐라고 말을 하면, 우리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렇게 행동했다네. 210
펑샤네 베개잇에도 이런 말이 새겨져 있더군. "결코 계급 투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가 하면 침대보에는 "폭풍과 격랑 속에서 전진한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지. 얼시와 평샤는 매일 마오 주석의 말씀 위에서 잠을 잤던 거야. 234
사람 목숨이 아무리 질겨도, 일단 자기가 죽겠다고 마음 먹으면 무슨 수를 써도 살 수가 없는 법이라네.그 이야기를 전해줬더니 자전은 그날 내내 괴로워하다가 밤이 되어 말했지.
"사실 유칭이 죽은 건 춘성 탓이 아니에요."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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