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타자화'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타자'범주에 여성을 억지로 집어넣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타자는 매혹과 동시에 모멸의 대상이 된다. '성녀'로 추앙되든 '매춘부'로 업신여겨지든 모두 한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세키네가 요시유키를 '졸업'하게 된 계기는, 미국인 여성과 사귀고 결혼하게 된 경험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이 문화의 여성은 '나는 당신의 편리한 '타자'가 아니다'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존재하는 타자란 진정한 '타자', 이해하는 것도 제어하는 것도 불가능한 진짜 타자, 자기와는 전혀 다른 미지의 몬스터인 것이다. 27
여기서 말하는 '괜찮은 여자'를 번역하는 것은 간단하다. 남자 입장에서 '편리한 여자', 80년대 다하라의 '나쁘지 않은 취향'에 맞는 여자, 지금은 멸종위기종이 된 여자를 말한다. 미우라는 이런 여자를 가리켜 '남성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여성' '모성을 느끼게 하는 여성'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이것을 번역하는 것도 간단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떠받들어 주고 나를 남자이게 해주는 여자' '밟히고 차여도 나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줄 여자'이다. 81
포르노그래피의 정석 가운데 두 가지를 들자면 첫째, 여자는 언제나 성적으로 준비되어 있으며 굳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응해줄 테세를 갖추고 있을 것. 둘째, 유혹하는 건 여자 쪽이므로 그 결과에 남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쾌락을 추구한 건 여자였고 그리고 얻고자 하는 바를 얻었으니 여자는 자발적 종속을 통해 보수를 얻고 있는 것이다. 대단히 편리한 설정이다. 135
그러나 여기에는 마스터베이션이 '정상'적인 성교의 불만족스러운 대체물이라는 점, 성욕의 최종 목표가 파트너와의 성교라는 점이 암시되어 있다. 여성의 마스터베이션 장면이 포르노 소비자로서의 남성에게 성적 자극을 주는 이유는 남근이 부재하는 곳에 자신의 남근을 상징적으로 대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141
남성의 여성 혐오는 타자에 대한 차별인 동시에 모멸이다. 남성은 여성이 될 걱정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성을 타자화하고 차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에게 있어 여성 혐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된다. 자기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것이다. 156
사람은 '여성'이 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가 짊어진 역사적 여성 혐오의 모든 것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 범주가 부여하는 지정석에 안주하면 '여성'은 탄생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여성 혐오에 적응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때문에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 여성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여성혐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그런 여성이 있다면)에게는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나는 내가 여자라고 하는 사실에 얽매여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고집하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 말을 다른 말로 번역하면 '나는 여성혐오와의 대결을 줄곧 피해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여성'이라는 강제된 범주를 선택으로 바꾸는 것 - 그 안에 해방의 열쇠가 있을 지도 모른다. 158\
그는 청년기의 '아이덴티티 확산증후군' 속에서 일부 소녀들이 매춘 행위에 몰두함으로써 '아무 존재도 아닌 자신'을 벌주고 그것을 통해 '특정한 존재'로 확립하려는 절망적 시도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소녀들의 많은 수가 성직자나 교사 같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그녀들은 자해나 스스로 벌을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무력화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
쇼핑 의존증, 호스트클럽 마니아, 유방 확대 수술, 얼굴 성형..... 여성스러움의 과잉이다. 그것도 전형적으로 남성이 우너하는 여성의 과잉된 모습이다. 그녀는 그 과정을 극단적 수준의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그것을 상품화하였다. 성형 수술을 받기 전과 후의 사진을 미디어에 공개함으로써 자학적일 정도로 자기현시적인 노출을 보이며 '여자가 가진 민망함'을 있는 그대로 상품화한 그녀는, '여성의 질투, 시샘, 비뚤어짐'을 그대로 상품화하여 내보인 하야시 마리코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하야시가 '인기를 얻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같은 단순한 이성욕을 표출한것에 비해 나카무라 우사기는 달랐다. 이 사람은 여성의 시선 말고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다. 204-5
자신을 희화화할 수 있다면 '루저'는 해학이 되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루저'는 자학이 된다. 해학을 웃을 수 있으나 자학은 웃을 수 없다. 아니, 눈물이 흐른다. 210
종종 '신세를 망쳐 윤락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라든가 '뒷골목 인생을 살아간다'는 식의 표현이 사용되곤 하는데, 그녀는 생활이 궁핍해서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했던 것이 아니다. 추악한 이중생활이 드러나 사회적인 제재를 받았던 것도 아니고 그 때문에 직장을 잃었던 것도 아니다. 설사 회사가 매춘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위법 행위가 아닌 이상 부당 해고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략)
사노가 타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성을 파는 행위가 인륜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옛날 사고 방식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타락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낭만주의적 뉘앙스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23-4
'매춘의 가격'이란 무엇일까?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으니 남자가 여자에게 매기는 가격이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한 여성 독자'가 간파한 것과 같이 그것을 여성이 남성에게 매긴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수수께끼가 한번에 풀리게 된다. 238
양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고 강제로 매춘을 했던 그녀는 "남자로부터 돈을 받는 이유는 네가 내 몸을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건 돈을 지불하는 동안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말해 돈을 받는다는 행위를 매개로 그녀는 자기 신체가 나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언했던 것이다. 이 동기는 '성적 승인'과 전혀 관계가 없다. 245-6
성애의 역사에 관해 이해하는 것은 성애의 현실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지 안흔다. 마치 그것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깊숙이 신체에 파고들어가 있어서 다른 방식을 상상할 수 없으며 그것을 변경하는 것은 신체의 고통과 자아의 붕괴를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81
동성애자 가운데에도 부모자식 또는 형제 관계와 같이 낙차가 있는 관계를 추구하면서 관계 양식의 안정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자란 이성애의 비대칭성 혹은 권력성을 혐오하며 '대등한 성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정의는 일부 페미니스튿르의 규범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282
개념은 개념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개념은 현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얻게 되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호색남이 실은 여성을 멸시하는지, 혹은 왜 남자가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여자를 욕망하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남성에게 이성애 질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성이 성적 주체임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성애 장치 아래에서 남자와 여자는 대등한 짝이 될 수 없다. 남성은 성적 욕망의 주체, 여성은 성적 욕망의 객체 위치를 차지하며 이 관계는 남녀 사이에 비대칭적이다. 이성애 질서란, 남성은 동성 남자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되며 남성이 아닌자만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하라는 '명령'을 가리킨다. 뒤집어 말하면 남성에 의해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 자는 '남성 아님=여성'이 된다. 그것이 남성일 때 그자는 여성화, 즉 '여자 같은 남자'가 된다. 여기서 '여성'이란 그 정의상 '남성'의 성적 욕망의 객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의 성적 욕망을 화기시키지나 않는 여자는 정의상 '여자가 아니게'된다.
호모소셜한 집단이란 이처럼 '성적 주체'임을 서로 승인한 남자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여성'이란 이 집단으로부터 배제된 자들, 오로지 남자들에게 욕망되고 귀속되고 종속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자들에게 부여된 명칭이다. 따라서 호모소셜한 집단의 멤버가 여성을 열등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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