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 이어지는 내용. 전작에서 오콩코가 서양 선교사들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자살을 선택한 후에, 그 오콩코의 손자가 영국에 유학을 다녀오게 된다. 그러나 손자 오비는 유학비용 800파운드를 우무오피아 진보 연맹에 갚아 나가야 하고,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결혼해서는 안되는 계급인 '오수'이며, 그로 인해 모두가 그의 결혼을 반대하고, 동생들의 학비를 대고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야 하고, 그와중에 우무오피아 진보 연맹의 기대까지 떠안아야 했던 오비가 결국 뇌물을 받았다가 걸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비의 원래 이름은 '오비아줄루'로 '마침내 찾아온 평안'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의 제목이 비극을 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식민국 - 혹은 '선진국' - 에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 자신의 고국에 돌아와 느끼는 좌절은 아마 비서구권 현대문학에서 자주 바라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이 주제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에서도 반복되거나 변주되는 주제이며 (특히 그의 첫 작품인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에서)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도로 개종한 오비의 가족도, 서구 교육을 받은 오비의 친구도, 심지어 영국에서 공부하며 만난 오비와 사랑하는 사이였던 클라라 마저도 '오수'라는 계급 앞에서는 우무오피아의 원로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그리고 나한테 의외였던 점은 전작에서 오콩코의 미움을 주로 사는 역할이었던 오콩코의 아들 겸 오비의 아버지가 생각보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는 것.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도 비극으로 끝을 맺더니 <더 이상 평안은 없다>도 비극으로 끝을 맺어 버렸다. 아체베의 나이지리아 3부작 중 두 권을 끝냈으니 마지막을 읽을 차례.그러고 나서는 다른 탈식민문학을 읽을 차례다......탈식민 문학을 실컷 읽고 나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자넨 나 보고 편협하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아직 우리의 모든 관습을 무시할 수 있는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어. 자네는 교육이니 뭐니 하고 떠들겠지만 나라면 오수와 결혼하지 않을거야. 208-9쪽
결국 돈을 제공하는 것은 몸을 제공하는것만큼은 나쁘지 않잖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 아가씨한테 마실 것도 주고 시내까지 자동차로 태워다 주었잖아요. 클라라는 깔깔대고 웃었다. 이 세상이 다 그런 거지요. 오비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 지 몰랐다. 140쪽
대학 학위는 현자의 돌이었다. 대학 학위 하나가 일년에 150파운드를 받는 3급 사무원을 570파운드 연봉에 자동차를 굴리고 보잘것 없는 집세를 내면서도 사치스러운 가구가 비치된 구역에서 살아가는 고급 공무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시렞로 봉급이나 문화적 설비의 불균형이 단지 이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유럽인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실제로 유럽인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일반 대중의 위치에서, 칵테일파티에서 "요즘 자동차가 잘 굴러가는가?"라는 한담을 나누는 엘리트 그룹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이었다. 1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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