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stri.destride 2012. 10. 1. 00:03

책 뒤를 보면 <타임>선정 현대 100대 영문소설, <뉴스위크>선정 100대 명저, <옵저버>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근데 이 말이 설득력을 발휘하게 되는 이유마저도 어쩌면 이 책이 쓰여진 이유 아닌가 싶어서 아이러니 + 잠깐의 절망이..

책 자체는 생각보다 금방 금방 읽혔다. 동생은 묘사가 너무 많아서 읽다가 그만두었다고 하지만 세세한 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즐겁게 읽은 책. 

이 책이 '문화기술지'로써도 손색이 없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 '문화기술지'라는게 가끔은 '으아니 내가 미개한 사람들인줄 알았던 이 문명화 안된 사람들이 사실은 나름의 지혜를 가지고 살아왔던거구나 이거 굉장히 과학적인거구나'라며 놀랄 수 있는 것 자체가 서구사람들의 오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부끄러웠던 점은, 책 내용을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비참하게 굶어 죽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생각보다 이 사람들이 '굶지 않는다'는 것에 내가 혼자 놀라고 있었던 것(-_-) 아프리카 사람이라면 서구사람들이 입다 버린 반쯤 찢어진 누덕누덕한 옷을 입고 배가 부풀어 있으며 팔다리는 깡마르고 파리 쫓을 힘도 없어서 누워서 슬픈 눈망울만 보여준다거나 하는 이미지를, 그 이미지를 '슬픔'으로 '소비하고 마는 것'에 비판적이었던 나 또한 결국 그 이미지를 아프리카의 이미지로 고착시켰다는게 너무 견고하게 떠올라서 슬프고 부끄러웠다. 

가난하다는 점이 바로 비참하고 슬프고 최악의 인생을 뜻하는것은 결코 아닌데, (이렇게 단적으로 말할 수 있는것도 아니지만) 흠 ........ 티비 없고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불쌍한건 아니지 않나..하는..?!그런?

그리고 주인공 오콩코가 나랑 좀 비슷해서 뜨끔뜨끔 한 지점도 있었다. (-_-) 남들 막 무시하고 (-_-) 자기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_-) 남들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무시하고 그런거 (-_-)

누군가가 누구의 '현재'를 '원시'라고 명명할 수 있는걸까? 그것은 정당한 것인가..?


"에제우두!" 그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생전에 가난했다면 다시 태어날 때 부자로 태어나라 했을 것이야. 하지만 그대는 부자였네. 그대가 겁쟁이였다면, 용기를 가지라 얘기했을 것이야. 하지만 그대는 용감한 전사였네. 그대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면, 되살아나라 했을 것이야. 하지만 그대는 오래 살았네.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 이전에 온 길을 다시 걷도록 하겠네. 그대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면, 편안히 가게. 하지만 사람이 그대를 죽인 것이라면 그자에겐 한시의 평안도 허락하지 말게."

p147


왜 본의 아니게 저지른 잘못으로 이렇게 심한 고생을 해야 하는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은 없었다. 생각이 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는 내다 버린 자신의 쌍둥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대지의 여신이 쌍둥이는 대지에 대한 모독이므로 없어져야 한다고 명했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들이 위대한 여신을 거역하는 것에 대해 엄정한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여신의 저주가 명을 어긴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온 땅에 퍼져나간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손가락 하나에 기름이 묻으면 네 손가락으로 번진다고 말하곤 했다. p149


"모든 일이 무사하고 삶이 달콘할 때 사람은 아버지의 땅에 속한다. 하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어머니의 땅에서 위안을 찾는다. 어머니는 이럴 때 너를 보호한다. 어머니가 거기에 묻히신 게지. 이것이 어머니가 가장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오콩코 자네가 어머니의 고향에 와 무거운 표정으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조심하게나.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신 분들을 화나게 할 것이네." p159


"우리말조차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겠다. 그런데도 백인은 우리 관습이 나쁘다고 말하네. 게다가 백인의 종교를 받아들인 우리 형제들마저 우리의 관습이 나쁘다고 말한다네. 우리 형제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는데 어떻게 윌가 싸울 수 있겠는가? 백인은 대단히 영리하네. 종교를 가지고 아무말 없이 조용히 들어왔네. 우리는 그의 바보짓을 즐기면서 여기에 머물도록 했네. 이제 그가 우리 형제들을 손에 넣었고, 우리 부족은 더 이상 하나로 뭉쳐 행동하지 않네. 그가 우리를 함께 묶어 두었던 것들에 칼을 꽂으니 우리는 산사이 부서지고 말았네." p207


치안 판사는 곧바로 사람이 바뀌었다. 단호한 행정가에서 원시 관습을 연구하는 학자가 된 것이었다. 

"왜 당신들이 직접 그를 끌어내리지 못한단 말입니까?"

"우리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한 남자가 말했다. p242


자신이 집필하고자 하는 책 속에서 그는 이 점을 강조할 것이다. 재판소로 다시 걸어가면서 그는 그 책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이 그에겐 새로운 자료였다. 전령을 죽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읽을 거리일 것이다. 그에 대해 거의 한 장(章)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한 장 전부는 아니어도, 어떻든 몇 개의 문단은 가능할 것이다. 이것 외에도 포함할 것이 너무나 많아, 자세한 사항은 과감히 잘라 내야 할 것이다. 그는 많은 생각 끝에 이미 책의 제목을 정해 놓았다. "니제르 강 하류 원시 종족의 평정."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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