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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16 글쓰기숙제 2차시

stri.destride 2020. 5. 17. 22:43

얼마 전의 평일,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넜다. 한강을 건너기 시작하면서 들렸던 안내방송의 기척이 강을 중간정도 지나왔는데도 계속 전해져서 이어폰을 뺐다. 평소와 다른 내용의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승객 여러분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혹여 오늘 일하면서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으셨다면 선반에 올려 두세요. 제가 차고지 가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추가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런 행동이야말로 사측이 원하는 불필요한 헌신 아닌가 하고 삐딱하게 생각하다가, 안내방송을 다시 곱씹어보면서 생면부지인 사람이 내 일상을 위로해준다는 사실에 조금 울컥했다. 나의 고단함과 외로움은 열차에 두고 내릴 수가 없고, 그 고통들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임을 잘 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안위를 걱정해준다는 사실이, 모두 마음 한 켠에 외롭고 고단한 구석을 품고 산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모두가 한 켠에 품고 살 듯이, 같은 날에 일어난 아픈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2014416, 제주도를 향하는 배에 탔던 사람들 중 304명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가 났으나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뉴스에 나오고 있을 때, 나는 회사 사람들과 다같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전원 구조라는 말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을 누군가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전원 구조가 아니었다. 정부는 사고 현장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손을 놓았다. 배에 탄 사람의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사고가 일어난 해 대통령은 해경을 해체하겠다고만 했다. 국가의 무책임함에 많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노래를 만들었고 어떤 사람들은 신문에 칼럼을 썼고 어떤 사람들은 사고 당일의 기록과 진상규명 활동들을 모아 영화를 찍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대통령은 탄핵되고 세월호는 인양되었다. 정권이 바뀌었고 2기 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과제와 안전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남겼지만,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롱은 현재진행형이다. 귀가길에 광화문을 지나면서세월호 떡집 오픈이라는 피켓을 든 사람을 보았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세월호 유족에 대한 루머를 가리키는 모양이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한 번도 전 사회적인 추모를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에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거나 끌려가 고통을 받은 일들이 무척 많다. 제주의 4.3 항쟁이 그렇고, 5월의 광주 항쟁이 그렇고,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일어난 일들이 그렇고, 부랑아들을 교화한다고 잡아가 강제노역을 시켰던 선감학원이 그렇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사건이 그렇다. 매 해 일터에서는 수천명이 안전사고로 사망한다. 정부는 진상 규명을 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유가족들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들이 많으며 여전히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많다.

전사회적인 애도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 책임이 있다. 어떠한 죽음이든 간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애도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