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주인공이 1944년생인걸 감안한다면 이 책은 시대를 앞서갔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소설은 나에게 너무나도 시끄럽고, 필라델피아의 사생아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계속 겹쳐져서 더욱 시끄러웠다. 앞부분의 몰리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는데 후반부의 몰리는 왜 고독의 우물 속의 주인공처럼 변해가는지, 1950년대는 다이크들에게 그런 시절이었는지, 역자는 왜 동성애자를 자꾸 '퀴어'라고 번역해서 혐오세력을 떠올리게 하는지...번역이 매끄럽지 않다. "레즈비언이 본인과 세상에 동시에 익숙하고 편한 존재는 될 수 없다는 교훈"이라는 역자의 소감은 끔찍하다. 몰리는 익숙하고 편한 존재가 되고싶지 않아 했는데, 고작 '교훈'이라는 단어로 가둬버리다니..
몰리가 만나는 여자들이 다양한 점과, 그래서 이 소설이 어디로 전개될지가 궁금해서 계속 잡게 되는 면은 있는데... 소설의 문체 자체는 그렇게까지 읽기에 즐거운 편은 아니다. 헤녀킬러 몰리의 불운한 결말이라고 해야하는건지 ...
"나도 몰라, 난 널 있는 그대로 좋아하긴 하지만, 좀 혼란스러워서. 네가 너 하고싶은 대로 모터바이크 타고 돌아다니고 그러면 나는? 어쩌라고? 그러니까 네가 나랑 똑같이 하고 다니면 난 어떡해?"
"젠장, 대체 내가 뭘 하고 다니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넌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난 나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거지."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나 봐." 그 애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95-6
"꺼져. 왜 넌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려고 그래? 주둥이 한 대 맞기 전에 헛소리 그만 좀 해."
"퀴어란 게 그런 거야.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그러니까 나에게 했던 말을 다른 사람들한테 하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각오하는 게 좋을걸." 101
"있잖아, 너한테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데. 다른 여자애들한테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내 차에 그 애들을 태워서 영화관에 같이 갔다가, 섹스하고, 집까지 태워서 바래다주는 게 전부야. 결혼하면 사람들은 무슨 얘기를 하고 살까?" 128
"알잖아. 레즈비언들은 남자같고 운동을 잘하잖아. 내 말은 몰리가 예쁘긴 한데, 왠만한 학교 남자애들보다 운동을 잘하는 데다가 여자처럼 행동하지도 않잖아? 나는 전혀 안 그러고. 난 그저 몰리를 사랑할 뿐이야. 그렇다고 내가 퀴어가 되지는 않아." 153-4
"안녕, 내 이름은 천하무적 마이티 모야. 이 동네 새로 았나 봐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네, 선생님, 새로 왔어요." 이럴 수가, 모는 모지리의 '모'인가 보다. 207
여자에게 키스하는 여자는 아름다워요. 여자와 섹스하는 여자는 다이너마이트에요. 그러니까 그냥 자기를 내려놓고 빠져보세요. 281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일은, 자기 자신으로서 진실을 말하고, 삶을 향하여 고통에 마주 서서 당신의 두 팔을 벌리는 것이다. 마음을 바칠 수 있는 대상을 찾으라. 내게는 영어, 말과 사냥개, 그리고 극장이 있었다. 당신에게도, 삶의 지평을 넓혀주고,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도록 깨우쳐주며,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이어줄 무언가가 나타나길 바란다.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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