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고로드의 우주선 (2016)
개인적으로 국가사회주의를 동시대에 재조명하는 시도들에 큰 관심을 갖고 산다. 그것은 소비에트연합이 해체되었을 때 자신의 "동지"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던 아빠를 이해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주변에 여전히 ussr 시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플라토노프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본주의 경제체제만을 겪은 내가 어떻게 그 시절을 평가하고 받아들여야할 지 아직까지도 스스로 정리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브고로드라는 오래된 지역의, 느긋한 정취를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에, 소모프라는 건축가가 뜬금 없이 구소련 시절에 12년이 걸려 지었지만 지금은 지역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고, 기이한 시공으로 조금씩 무너져가는 극장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는 여러 사람들을 쫓아간다. 길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 극장 앞에서 노닥거리는 젊은이들, 극장을 설계한 소모프, 노브고로드 시의 공무원, 당시 극장 설계 총 책임자, 전 극장 관리인, 현 극장 관리인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그리고 감독의 상상력도 함께.
이 극장을 세울 때 지역 사람들이 강제동원 되었던 이야기, 소모프의 예술 엘리트주의적 발언들, 지역 공무원의 무능함, 동네 젊은이들의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 혼자서 극장을 돌보는 예전 관리인까지.. 여전히 구소련 체제의 행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것이 왜인지도 아직 모르겠다. 나는 그저 작은 단서들을 줍듯 기록들을 찾아다닌다. 다만 이 현실감 없는 필름이 보여주는 말들이 모두 현실이라는 것이 주는 압도감은 .. 언제나처럼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태원, 강유가람
올 23분기에 거의 매주 간 술집 얘기여서 흥미가 돋아서 보러갔다
40년동안 이태원에서 살고 일을 해온 세 여자와
5년 가량 이태원 뒤 한남2-3구역에서 "마을"을 만든다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대한 영화였다
청소년 출입 금지 골목의 나이든 여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 세상은 온통 젊은 여성의 이미지만을 내보내려고 하기 때문에 그만큼 보러 갈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 영화
"집창촌.. 아니 윤락업소의 윤락녀, 무슬림, 아프리카계 흑인이 모여사는 곳, 재밌잖아."
"여기 재개발 되어도 씨발 앞에서 장터 하면 재밌겠다."
(이슬람 성원이 보이는 옥상에서) "여기 너무 좋다 시골 같고."
누군가들은 영화속에서 그렇게 말을 하지만
누군가들은 치킨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피시방에서 전화하고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골목에서 나물을 다듬는다
세 여자들은 연민을 허하지 않는 사람들이라서 좋았다.
익선동이든 이태원이든 이성애자들이 오지 않던 골목에 이성애자들이 마구 찾아오는건 어쩌면 내 또래의 주거빈곤과 맞닿아있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혼인연령은 늘어나고, 집에 가기는 싫고, 기다리는 가족도 크게 없고, 모을 돈도 없다면..
하지만 여튼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아파트 생태계 보고옴
1) 영문 제목은 이콜로지 오브 콘크리트인데,, 한글 제목은 아파트 생태계
2) 서울의 많은 아파트가 나온다. 여의도시범 회현시범 아시아선수촌 목동 서소문 상계동173 반포주공 마무리는 둔촌주공
목동아파트 때 싸웠던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는걸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동원 감독은 이제 상계동 173 시장 있던 자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에서 어떤 아저씨는 뒷마당이 있다고, 복도식 아파트의 타일 복도를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가 있으면 참다가 나가서 놀아라 한다고 했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는 아이를 안고 먹이고 유모차에 태우고 씻기고 놀이터에 데려가고.. 이 집은 녹물이 계속 나온다고 했다.
아파트 재건축 이야기 하는 자리에는 항상 노인들밖에 없어. 디지털 시대인데 경비원을 많이 두는건 아날로그적이라는 노인의 말. 80대를 8학년이라고 하는 말.
둔촌주공아파트 고양이 생태이동 사업이 서울문화재단 펀딩 선정되었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이 사는 곳이 헐리는 것이 싫다, 아파트는 내 고향이다, 고양이들이 좋다, 는 말 모두 다 이해가 가는데 유해하지 않은 결국은 기득권에게 공손한 청년의 상을 갖출 수 없는 내 삶이 생각나서 였던 듯 하다
요새의 다큐는 의식의 흐름이 대세인가 ..... 나는 한강다리 밑에서 그 다리들에 접속하는 고가도로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고가도로 밑에 서면 드는 압도감이 좋았다.
나는 아파트단지에서 자랐지만 아파트가 내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열다섯살 까지 열 번 이사를 다녔다. 목동이라는 지역은 내 유년이 서린 곳이지만 언제부턴가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지 마음이 편한 곳은 아니었다. 그 작고도 큰 동네에서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부모들의 연합과 부모의 기대를 엇나가는 아이들 내가 어떤 아이와 놀았다고 혐오스럽다며 그 뒤로 나와 쌩까버린 친구 오빠에게 맞았다며 울며 걸려온 전화 선생님에게 양 뺨을 맞아 여드름이 다 터져버린 아이 텝스시험 일주일 전부턴 하루에 여섯시간씩 문제풀이 시키던 공포의 원장 그런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공원 분수대를 바라보며 한없이 떠들던 기억이나 독서실 옥상에서 나누던 대화 토스트 사먹는다며 깔깔대며 내려가던 엘리베이터 내 대답에 눈 빛내며 칭찬해주던 국어선생님 몰래 만나서 산책하던 고속도로옆 숲길 새벽에 공부하다 쌀을 누가 쏟은 줄 알았는데 빗소리인걸 알아차린 순간 낮은 천장의 구립도서관 같은 빛나던 기억들도 나에겐 자리잡고 있어서, 도시 어린이는 놀 줄도 모르고 자연도 모른다며 불쌍해하는 말 들으면 누구 삶을 감히 재단하나 싶어 비웃는다.
영화는 손정목씨만을 집요하게 쫓는다. 그 외의 사람들은 분절되었지만 아파트로 연결된 개인으로 남는다. 개인 인터뷰가 좋았고, 마지막에 누군가의 영전에 바친다는 말에 놀랐고, 아파트를 멀리서 조망할 때마다 각 아파트별로 달라지는 풍경이 좋았다.
나는 선의라고 굳게 믿는 얄팍한 나약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한 가벼운 연민도 좋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