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고, 빽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통해 삶을 바꾸면 좋겠다는 건 오랜 바람이다. 그러려면 먼저 그들이 정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삶을 바꾸는 무기로 정치를 활용할 수 있게 하려면 정치, 특히 진보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9
2010년 지방선거에서부터 2011년의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까지 무상급식 이슈를 두고 보수가 바보같이 반대를 표방하고 나섬으로써 형성된 찬반 구도에서는 진보 진영이 선전했다. 그런데 그 뒤로 보수가 영악하게 반대 입장을 접고 '누가 더 잘하는지 놓고 경쟁하자'는 식으로 구도를 바꿔버리자, 진보 진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하다 결국 이슈 소유권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22
정치에서 협상이나 타협은 어렵고, 대결이나 비판은 쉽다. 협상이나 타협을 위해서는 자기 진영을 설득해야 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때문에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정치 방식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정치적 계기는 대개 차협에 의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유능한 정치인이라면 타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치인에게 부여된 일종의 숙명이고 천형이다. 23
상대가 있는 게임이 정치다. 특히 선거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상대가 못하는 것 때문에 이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야당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실력으로 승리하기보다는 여당의 실정 때문에 이기는게 상례다. 한국처럼 한 표라도 더 얻은 정당이나 세력이 모두를 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정치 구조하에서는 입법이나 어젠다 세팅에서 야당의 운식 폭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반사이익은 야권 부활의 필수조건이다시피 하다. 29
반대가 아니라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판을 바꿨어야 하는데, 이런 우열 프레임에선 진보진영이 유독 약하다. 조금이라도 찬반 구도가 흐트러지면 금방 자신감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32
정당에 부여된 고유 기능 중에 하나가 공천이다. 정당이라면 좋은 후보를 지지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정당이 시민사회 또는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정책과 인물과 좆기 세 가지 뿐이다. 현재처럼 정당 간의 정책 차별성이 약화된 데다, 정당 이외에 여러 좆기이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환경, 또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인물이 갖는 중요성은 점점 두드러진다.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세우는 게 바로 공천이다. 그런데 이 공천ㅇ르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하면 그 정당은 이미 정당으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 (중략) 각 당이 자신의 정체성, 노선, 비전에 걸맞은 후보를 제시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유권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논리다. 41
정당을 연구하는 학자는 많으나 정당 내부에 대한 연구는 거의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정당 내가 아니라 정당간의 문제로 이해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정당 내부의 시스템이나 역학,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비공식이나 커튼 뒤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정당 내부의 일을 민주주의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함의를 담고 잇다. 민줒거 질서에 부합하는 기본적 절차만 준수하면 나머지는 리더십 또는 거랜 타협의 영역으로 남겨두자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당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당내 리더십의 형성을 막고, 정치적 역동성의 공간을 아예 없애버리려 한다. 45
불행하게도 잘못된 허상 혹은 헛된 신화라고 해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어떤 해석이나 관점을 평가할 때는 과연 이런 해석이나 관점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따져보는게 유용하다. 결국 누군가 득일 보기 위해 그런 해서고가 관점을 지지하고, 환기시키고, 부추기기 대문이다. 잘못된 허상과 헛된 신화는 잘못된 처방과 헛된 노력을 낳는다.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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