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 저자
- #{for:author::2},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for:author} 지음
- 출판사
- 마티 | 2015-03-11 출간
- 카테고리
- 정치/사회
- 책소개
-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다룬 책은 이미 많이 출간돼 있다. 원전사...
* 이 글은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노동당 기관지 블로그 주소: http://laborzine.laborparty.kr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 재해와 같은 인류의 아픈 족적을 더듬어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지역의 슬픔을 공유하려는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처음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66년이나 널리 알려진 것은 2000년도부터다. 이 새로운 형태의 관광방식은 단순히 그 지역의 역사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이 일어난 곳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참담함과 슬픔을 직접 느끼고 그 슬픔을 기억하고 널리 공유하는 데에 그 의의를 둔다.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므로 비극과 비극이 자리잡은 장소는 대개 잊혀지기 마련이다. 의도적으로 슬픈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고 그 비극을 지우려는 세력들도 존재하며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리워진 목소리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자, ‘관광’이라도 좋으니 체르노빌에 한 번 가보자.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현실의 복잡 미묘함을, 이미지가 가하는 폭력을 직접 대면해보자. 이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이다. 10페이지 서문
책은 다크 투어리즘을 기조로 체르노빌에 다녀온 일본인 여섯 명의 관광기와 원전 관련 인물들에대한 취재로 구성되어있다. 책의 앞부분은 2013년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약 36시간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관광을 다룬다. 관광은 사고 현장에서 대략 100km 정도 떨어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시작한다. 관광 참석자들은 편의상 ‘30km 체크포인트’라고 불리는 디차토키 체크포인트에서 처음으로 차를 세우고 검문을 받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고 지역 반경 30km 권내의 지역을 강제이주구역으로 지정했으며 이 구역의 정식 명칭은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존’이라고 불린다. 디차토키 체크포인트에서 10km 가량 떨어진 체르노빌은 모스크바보다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으나 19세기 말 포그롬과 2차대전 중 나치의 점령으로 대부분의 유대인은 학살당한다. 그 뒤 체르노빌은 소련에 영입되고, 1978년 당시 명칭으로 ‘V. I. 레닌 기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진다. 현재 존에는 사고 이후 자발적으로 귀환하여 살아가는 ‘사마셜’들이 약 190명정도 있으나 고령화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체르노빌 시내에는 원전 사고 관련 조형물들이 모여있는 ‘국립 쑥의 별 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2011년 개장한 이 공원에서는 매년 4월마다 기념식을 여는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이 살았던 마을에 다녀온 뒤 공원에 돌아와 추도식을 갖는다.
후쿠시마에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념공원이 있으면 좋겠네요. 히로시마가 그런 것처럼 후쿠시마도 그 역사가 드러나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저도 돕겠습니다. 92-93 페이지
쑥의 별 공원을 지나 체르노빌 발전소 야외를 간단히 둘러보는 것으로 첫 날의 일정은 끝나고, 다음날 이들은 관리동에서 시작하여 1호기를 지나 4호기를 막아 놓은 석관까지의 코스로 체르노빌 발전소 내부를 관광한다. 황금색 복도를 지나 70년대 발전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발전소 내부에 대한 묘사는 글보다는 사진이 주를 이룬다. 이곳의 발전 기능은 2000년에 멈추었으나 여전히 송전업무가 이루어지고 있어 2800여명의 노동자들이 여전히 업무를 보고 있다. 생각보다 차분하고 평온하게 농담을 나누기도 하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취재진은 인상 깊게 묘사한다. 그 후 일정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함께 만들어진 인공도시 프리피야트 견학이다. 사고 이후 30여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는 프리피야트의 건물은 많이 노후화되어 개인의 책임 하에만 들어가볼 수 있다. 소개받은 사마셜과의 인터뷰로 관광을 마무리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체르노빌 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1년에, 투어를 다녀온 한국 취재진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취재기나, 국내 신문의 원전 사고 처리반(리크비다따르)에 대한 인터뷰보다 훨씬 있는 그대로의 체르노빌을 보여 주는 데에 노력한 책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이미지가 가하는 폭력을 직접 대면’하자는 기획 의도에 여러모로 충실한 서술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키예프에 위치한 체르노빌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과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려는 많은 박물관들과는 다르게, 종교적 상징을 활용해 감정을 자극시키는 전시물들로 이루어져있다.
전시를 준비할 때에는 감정과 상징성을 중시합니다. 회의록과 같이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환기하는 배치가 되도록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른바 시를 쓰듯이 전시를 합니다. 무미건조한 사실을 열거하는 것 만으로는 역사가 지닌 무게가 전해지지 않습니다. 80-81쪽
원전 사고로 인해 생겨난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이미지, 성 가브리엘 성상과 방호복이 나란히 놓인 동방 정교회의 이코노스타시스[1]를 지나 노심 영역에 들어오면,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모니터 뒤로 사고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의 얼굴사진이 붙어있는 벽이 자리잡고 있다. 어떤 이들에겐 낯설 수 있는 상징들로 가득한 이 박물관은 방문자로 하여금 어떠한 형태로든 기억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공간이다.
존 투어를 처음 기획한 주체는 사고 당사자 혹은 관계자들이었고 그들이 존에 머무르는 이유는 각각 다르다. 존 개방을 승인한 우크라이나정부는 개방을 통하여 이를 새로운 원전 추진정책의 프로파간다로 사용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놀라운 발상이다. 그러나 사고 지역을 실제로 보게 된 관광객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의 예상을 어긋난다고 한다. 존 투어와 체르노빌 박물관은 관광객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는 공통의 의도를 지닌다. 망각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드높아지는 한국 사회에서 비극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보존함과 동시에 기억을 마주한 이들에게 물음을 던지는 방법을 체르노빌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2부 취재 편에는 관광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 취재 과정을 기록하고 방사선량을 측정한 디렉터의 기록, 관광을 다녀온 후 집필진간의 좌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비교하며 후쿠시마 관광지화 계획에 대한 사회학자의 글과 체르노빌에 대해 참조할 수 있는 매체들의 안내가 실려있다.
모든 것이 나쁜 상황이라든가 또는 모든 일이 순조롭다든가 하는 일은 없습니다. 눈물에 기대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 박물관이 내거는 슬로건이 있는데 혹시 보셨나요? 전시실 입구 쪽에 걸려 있습니다. ‘슬픔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려에는 한계가 없다.’ 이것이 우리 철학입니다. 201쪽
우리는 위험 버튼을 누르라고 명령 받았을 때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아니요’라고 말할 힘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거부할 줄 아는 인간을 길러야 합니다. 누가 버튼을 눌렀는가가 아니라 왜 버튼을 눌러야 했는가, 그것을 사회학자, 철학자의 시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202-3쪽
체르노빌 측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대부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실제 겪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차분하다는 인상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고, 정부 지원금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고 업무량도 과다하지만 ‘평생 이 일을 놓지 못할 것 같다’는 대목에선 활동가의 삶은 어디든 똑같은가 싶기도 하다. 몇 년 전, 다크 투어리즘이란 단어도 모를 그 때에 나는 책을 읽고 홀린 듯 독일 곳곳의 나치 관련 유적들을 쫓아다닌 적이 있었다. 시종일관 반성하는 모습 사이에서, 일년에 이 장소를 보수 및 유지하는데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지만 가해의 기억을 잊지 않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허물지 않는다는 안내문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거의 마지막으로 들렀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피해의 흔적을 마주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서글픈 경험이었다. 존 투어를 가게 된다면, 독일에 있던 시절보다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앞날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절취선이 포함된 우크라이나 및 투어지역 관련 지도,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사건의 규모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풍부한 사진자료와 각종 기념관들의 방문을 돕는 안내자료 등 여러모로 이 책은 가이드북을 많이 본뜬 모습이다. 실제로 취재진에게 인상 깊었던 전 세계의 다크 투어리즘 지역에 대한 안내도 서술되어 있어 슬픔의 공유와 승계를 키워드로 하는 다크 투어리즘의 본 의도에 충실하다. 안내되어 있는 지역 중에는 제주도의 4.3 평화기념관도 있다. 일본식 디자인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깔끔한 레이아웃과 픽토그램을 활용한 용어 설명부분 등 안내서 디자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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