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모임을 준비중이다. 사실 작지 않아질거 같기도 하다.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워낙 다양해서 어떻게 해야 다들 무언가를 남겼단 마음을 느낄 수 있을지, 충만한 시간이었다고 느낄 수 있을지 고민된다.
예약신청한지 네 달만에 책을 받았다. 아..책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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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많이 읽고 많이 토해내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오히려 말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근 한 달을 끙끙 앓았다 식사 대신 각설탕을 씹어넘기면서 버티는 기말고사 기간. 난 뭐가 그렇게 겁이 많고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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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어느 때보다 그대 정직한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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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헤르만 잉에보르크 바흐만 크리스타 볼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페터 한트케 지넷 윈터슨 한강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아베 코보 래드클리프 홀 안젤라 카터 진은영 치누아 아체베..타자와의 만남/화해/결투/응시/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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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있는 말보다
없는 말을 꿈꾼다
금세 가족이 되어 동화되는 말들은
그 말들이 아니다 그의 말들은
닮기 위해 오지 않고
설명하기 위해 오지 않는다
나는 이 말들의 음역이
좀체 떠오르지 않아
많은 날을 벙어리처럼 침묵해야 했다
때론 벽을 쿵쿵 울려보기도 했다
나는 오늘도 이 말들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아귀처럼
어느 길목에서 그 말들이
내 몸을 삼킬 수도 있다
나는 전혀 다른 목숨으로 그 말들을
토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 말들을 뼈를 토해놓고
이것이 말이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송경동, 아직 오지 않은 말들(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2009)
초판 13쇄..무심코 보고 깜짝 놀랐다. 13쇄를 찍은 시집.
많은 사람들이 과거사진 뒤지며 추억팔이 하기 바쁜데
나는 돈을 준대도 학생회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선거철만 되면 아직도 괴롭다
내가 누구 라인이니 니가 내 라인이니 하는 모습을 보니 진절머리나게 싫다
학생회 하는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저렇게 신나하는지 이해할수가 없다
차라리 대학원을 타대로 갔으면 이꼴저꼴 안봐도 됐을텐데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끔찍하기 짝이없다 어차피 난 유권자도 아니다
3년전의 일기에도 도와줘요 지장보살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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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에 개표보느라 못자서 탈이 난건지 모르겠는데..이제 알았다. 나는 대의제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대의제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사람이고. 선거는 보는것만으로도 힘들고 되고나서도 힘든거라 마냥 축하를 해줄 수가 없고. ㅇㅇ대학교 출신인걸로 너무 많은 혜택을 누렸지만 그런 정체성으로 당사자운동 하고싶지 않다고. 나 자신의 특수성과, 운동을 엮어나갈 때 필요한 서로의 보편성을 조율하는게 어렵다고..그래. 그때 내 선택은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는 삶의 시작이었으나 잘한 선택이었다, 라고. 나는 몇 가지의 만성질환과 함께, 그 덕분에 결 고운 시간들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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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괜찮아, 한강(일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시집. 문학과 지성 시인선 438, 2013.
예기치 못하게 작은 돈을 벌었다 서점에 다녀왔고
지면관계상 각주가 잘려나간 내 글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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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기억중에 가장..최초의 기억은 프리다칼로 화집을 보던 날. 나는 몸 밖으로 튀어나온 심장을, 피투성이 시트 위 다리 사이에 있던 아기를, 배가 갈라진 채로 누워 웃고 있던 자화상을 기억하고. 어릴때 집근처에 국군수도통합병원과 화장장이 같이 있었는데, 화장터가 뭔지도 모르고 괜히 매우 무서워했었다. 그 동네는 지금 생각해보면 기피시설 밀집지역이었네..그 근처 큰 안과에 끌려가서 다래끼 터뜨린 기억. 자꾸 이름이 바뀌던 큰 산부인과. 외갓집에 갈 때는 마곡역이 개통전이어서 불이 꺼져있었는데, 한참 집중해서 마곡역 안내판을 보면 그렇게 뿌듯했고. 이사온 아파트단지 상가의 지하층 ㅂㅣ디오대여점을 엄마가 자주 데려갔었고, 상가 지하층은 기계실이나 가스관들이 그대로 드러난 형태였는데 기계들때문에 들리는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무서워했고. 어릴 적 주유소 옆건물 지하에는 복지매장이라는 큰 마트가 있었고. 그 맞은편에 있던 고등학교는 한자로 학교이름이 적혀있었고..결국 그 학교에 배정받고. 여덟살 때 지하철5호선이 개통된 이후로 선생님들은 무조건 지하로만 등교하게 했고..차곡차곡 쌓인 유년의 기억. 장난감 가게라고 하기엔 어두컴컴하고 진열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던 곳. 집앞 로데오거리가 그토록 커 보였는데..열아홉 겨울에 너무 궁금해서 계속 걸었는데 너무 금새 끝나버려서 계속 걷다 걷다 발산역에서 백고파서 버스타고 집에 돌아오고. 서남물재생센터. 신방화역. 방학숙제때문에 갔던 개화산에는 미친여자가 살았다고. 방화도시개발아파트. 불꺼진 버스들이 차고지로 들어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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