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누아 아체베의 딸이라고 불린다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이다. 아디치에의 소설은 이거 말고도 다른 책이 더 있었는데, 내가 접한 첫 소설집. 미국과 나이지리아의 관계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랑 어떻게 보면 비슷한 점이 많구나 - 하는 느낌. 그리고 결국 미국이 누군가에겐 구원일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구나 싶은 책.
아체베의 3부작이 나이지리아에 '서구문명'이 유입되면서 그들이 살아가던 공동체가 어떻게 부서져가는지, 그리고 그 후에 어떤 삶을 이어가는지의 '큰 그림'을 보여줬다면 아디치에는 그 부서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더 '짧은 시간'을 포착해내서 보여준다. 물론 이건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의 호흡 차이 일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좋았다. 서구에서 수학하고 온 사람이 자신은 '서양식 사고를 투영하지 않는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 아프리카의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이것은 아프리카적이지 않다'라고 당당하게 재단하는 앞에서 '이건 내 얘기라고요!' 라고 외치는 모습이라든가, 반정부인사인 남편이 미국으로 탈출하고, 아이는 살해당했는데 미국 대사관에서 자신의 망명사유를 대사관 직원에게 '납득'시키는 대신 아이가 죽은 자리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 모습이라든가.. '더 나은 세상'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날선 질문들.
마지막 이야기였던 고집센 역사가가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얘기를 하더라도 아주 모호하게만 했다. 마치 우리가 진흙탕 방공호 속에 숨어 있다가 공습이 끝나면 분홍색이 점점이 섞인 숯덩이 시체들을 묻었던 것, 카사바 나무껍질을 먹었던 것, 아이들의 배가 영양실조로 부풀어 올랐던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처럼. 그것은 비아프라 생존자들 간의 암묵적 합의였다. 100쪽
나이지리아에서였다면, 땀흘리며 허둥지둥 하는 복사가 든 성수통에 신부가 담근 것은 망고나무에서 꺾은 싱싱한 녹색 가지였을 것이고, 신부는 성큼성큼 걸어다니면서 물을 뿌리고 빙글빙글 돌아서 성수가 비내리듯 했을 것이며, 사람들은 흠뻑 젖은 채 미소를 띄고 성호를 그으면서 자신들이 정말로 축복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P218-9
그녀는 우문나치로 돌아가서, 어렸을 때 바늘처럼 가는 꽃자루를 빨아먹었던 익소라꽃을 심고 싶었다. 한 포기면 충분할 것이다. 우곤나의 묏자리는 아주 작았으니까. 꽃이 피어서 별이 모여들면 그녀는 땅 위에 도두앉은 채 꽃을 따서 빨아먹고 싶었다. 그리고 나중에 다 먹은 꽃들을, 우곤나가 레고 블록으로 그랬듯이, 일렬도 나란히 늘어놓고 싶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새로운 삶이라는 것을. 186쪽
우곤나가 진짜처럼 보여야 해요. 울어요. 하지만 너무 많이 울지는 마요. 178쪽
당신은 그에게,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냥 사는게 원래 그런거라고 말했다. 163쪽
자신은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아프리카 학자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참모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아프리카라는 공간에 서양식 사고를 투영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말하고 있는거라고 했다. 145쪽
그건 내가 그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라는 사람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243쪽
그레이스는 깊은 공포를 느끼며 이 이야기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 존엄성의 관계, 책에 인쇄된 딱딱하고 명백한 것들과 영혼에 새겨진 부드럽고 모호한 것들 간의 관계를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281쪽
그레이스가 유산을 네번 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날 밤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 그녀가 케임브리지 시절 얘기를 한번만 더 들었다간 자기가 그를 목졸라 죽이리라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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