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의 책은 십여년 전에만 읽었던 터라 이 사람이 얼마나 사회 문제에 있어 민감한 사람인지도 몰랐고, 사회주의자라는것도 알지 못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르포르타주라는 것도 몰랐고 ... 1부는 광부들의 삶에 대한 르포르타주, 2부는 오웰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를 서술한 책이다. 도서관에 갔더니 출판사 버전이 두 개라서 당황했다. 구체적인 말로 서술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하고, 그리고 그렇게 선언적으로 말하는 것 또한 망설여지는 어떤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한겨레신문사에서 나온 책으로 빌렸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석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석탄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는 좀처럼, 또는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당신의 차를 모는 것은 그 광부들인 것이다. 꽃에 뿌리가 필요하듯, 위의 볕 좋은 세상이 있으려면 그 아래 램프 빛 희미한 세상이 필요한 것이다. 48쪽
어떤 육체 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49쪽
어떤 면에서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9쪽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합당한 한계 내에서는 얻을 수 있다는 일정한 예상 - 67쪽
1부에서 오웰은 탄광지역의 주거 실태라든가 광부들의 삶을 성실하게 묘사한다. 전쟁 직후의 영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게 나빴다는 사실을 독자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오웰은 탄광 사람들의 삶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열악한 상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 외에도, '광부들의 삶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나쁘지 않다'는 통념을 월급 명세서의 항목 별로 조근 조근 파헤쳐 그 통념을 반박하는 방식을 취한다. 사실 이러한 세세한 부분까지 반박할 수 있을 만큼 취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언론들도 쉽게 그러하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이 프로젝트가 장기 프로젝트라고 할지라도) 오웰이 꽤나 치밀한 사람임을 추측할 수 있다. 오웰 자신이 인도에서 경찰로 근무했었고, 그 사람들을 자신이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았더라도 식민주의의 앞 부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고 반성하는 모습도 눈에 띄고, 오웰 자신이 자신을 노동 계급과 분리하여 냉철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웰의 모습은, 자신이 이전에 지내던 세계와 굉장히 다른(대개 훨씬 열악한) 세계 안에 빠져들었을 때에, 선의를 가졌던 사람들이 대개 처음에는 도와주려던 마음과 그 사람들의 삶이 열악한데서 오는 마음아픔과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과는 꽤나 대조적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계급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고 (설령 그가 노동 계급 사이로 스며드려 했고 그렇게 가는 과정에 있어서 민감하고 신중하게 생각했음이 군데 군데 드러나지만), 노동자 계급들이 부르주아 계급과 다른 점들에 있어서 따박따박 짚어낸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랑자들과 어울린다고 해서 계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자신의 계급적 편견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을 뿐이다. 207쪽
아마 그는 사회주의자란 '어딘가' 별난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다.
"채식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멀쩡한 사람들을 상당수 멀어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심각한 의미, 압제에 저항하는 구호, 더 진정한 사회주의자, 사회주의란 곧 정의와 상식적인 양식.
내가 보기에 많은 사회주의자들의 숨은 동기는 병적으로 심한 질서의식일 뿐이다. 그들이 현 세태를 불쾌히 여기는 것은 그것이 비참한 현실을 초래하기 때문도 자유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는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세상을 장기판 비슷한 무엇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착취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증거는 많이 못 내놓는다 해도, 착취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는 아주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희한한 것은 거의 모든 사회주의 작가들이 타고났거나 선택해서 자기가 속한 계급에 대해 그토록 쉽게 분노를 터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242쪽
사회주의의 '근본'취지에 공감하는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은 어느 심각한 사회주의 정당에도 자기같은 부류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245쪽
뒷부분으로 갈 수록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이라기에 어떤 사람은 너무 호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들이 마구 쏟아진다. 오웰이 얼마만큼 사회주의를 사랑했는지 절절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웰이 살던 시대보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 심화되었지 덜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 시대에, 오웰의 지적은 아직도 굉장히 유효하다는게 ..... 그 동안 사회주의자들의 삶이 쉽지 않았지만 그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웰의 지적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 점이 어떻게 보면 참 마음 아프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오웰 말대로 '기회'일까 싶기도 하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0) | 2013.03.17 |
---|---|
우리 반 일용이,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0) | 2013.03.16 |
크눌프, 헤르만 헤세 (0) | 2013.02.19 |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윌리엄 포크너 (0) | 2013.02.19 |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0) | 2013.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