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더 이상 사랑받기만을 갈구하지 않을 때, 더 이상 도망가는데 급급하지 않고 고통을 숨기지 않을 때, 그러나 침착하게 자신을 가다듬어 어떤 이들을 위해 긴 시간을 굳건히 애쓸 때. 우리 마음이 블랙홀을 벗어나 자신을 더 이상 괴물로 취급하지 않고, 사람들이 나를 배척하거나 혐오하며 상처를 줄 거라 여기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톱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선택할 줄 알며 실패를 받아들일 줄 알게 돼 비로소 좌절을 마주할 능력이 생길 때. 이해하기 힘든 슬픔, 회한, 후회를 차분히 바라볼 수 있을 떄. 그럴 때 거울 속 다정한 내 모습이 보이고 사람들 틈에서 선의의 눈빛을 구별해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따뜻한 빛을 뿜어내고 타인의 친절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역량이 있다면 역시 사랑도 받을 테니. 66
나에 대한 감정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저 정의로운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을 위해 곤란한 일에 선뜻 나서는 그런 정의감은 정말 막다른 길에 있는 사람을 구해냈다. 만일 그를 못 만났더라면 내가 과연 그해를 버틸 수 있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런 친구를 여러 번 만난 덕분에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매번 도망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부터 곤란에 처한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기로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동성애자'라고,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꿋꿋이 말하며 생활 속에서 동성애자임을 진지하게 관철시키고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더 사나운 공격을 마주할 것이다. 나 역시 ㅜㄴ군가를 위해 계속해서 노래할 수 있기를, 모든 성소수자가 최소한 자신을 위해 노래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자신의 영혼을 지켜야 한다. 가장 고달픈 시기에는 우리 마음은 자유로운 것임을, 사랑도 자유로운 것임을. 우리는 그저 아름다운 존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80-81
성소수자가 열사가 될 필요는 없다. 이미 많은 이가 성적 지향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기까지 우리를 데려온 것은 무수한 차별, 박해, 따돌림을 당한 사람,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사람,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 힘들게 발버둥치던 이들, 생활이 외롭고 괴로워도 동성애자의 권리를 위해 분투해온 선배들 덕이다. 이 길은 슬픔이 어려 있는 유골로 가득 차 있다.
더 이상 자신의 성적 지향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한다. 살아 있어야만 자신을 위해서, 다른 성소수자를 위해서, 미래의 성소수자를 위해서 이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독히 먼 길이다. 용감하고 굳건하게 끝까지 버텨야만 변화를, 변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87
우리 모두 일어나자.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계속 이어나가자.
저녁 무렵 부슬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그곳을 떠나는 커플 몇 쌍을 보았다. 가방에 무지개 깃발을 꽂은 채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멸시받지 않고 숨을 필요 없이 미래가 없음을 걱정하지 않는 것.
우리의 미래가 이와 같기를 바란다. 98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진 것이 아니다. 연인으로서 함께할 수 없어서 헤어진 것이다. 이 사랑은 가슴속에 묻혀 계속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앞으로도 사랑 속에 살아간다는 의미다. 142
힘낼 필요 없다. 이미 있는 힘껏 노력했다. 그러니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바람을 쐬고, 맛있는 음식을 즐겨 먹고, 우정과 사랑을 온전히 느끼며 숨 쉴 틈을 주어야 한다. 언젠가는 그 악몽이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도록 말이다. 되살아날 길은 앞으로 더 많이 펼쳐져 있으니 자신에게 잘해주자. 지치면 조금 천천히 속도를 늦춰 푹 쉬자. 이미 회복하는 길에 들어섰다. 인내심을 갖고 유지하다보면 도착하리라. 176
서로의 사랑을 품고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다니다가 돌아와 상대에게 공유하면 된다. 서로가 서로의 중요한 일부라는 것을 애써 언급하지 않아도 되니 수시로 고려하지 말기. 그렇지만 곁에 있을 때는 서로에게 아름다운 것을 많이 털어놓기. 바로 그 순간, 시간이 길든 짧은 소통하고 진지하게 이해하기. 설령 오늘은 딱히 할 말이 없을지언정 그저 조용히 함께해주기.
이것이 바로 절친이다. 204
맞다. 나는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다고 믿었어. 누구 옆에 있든 이상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사랑을 하든 언제나 알 수 없는 방해를 받는다거나 극복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다. 열과 성을 다해 사랑을 해도, 심금을 울리는 사랑을 해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사랑은 늘 인생의 화제이며 골칫거리였다. 206
결혼 여부를 막론하고 일단 선택할 권리를 갖자. 이 선택지가 생긴다면 성소수자의 처지가 많이 개선될 것이다. 애정 문제의 고비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모르는 절방적인 연인들에게 더 나아갈 희망이 생길 것이다. 251
슬픔, 고통, 절망, 분노는 찰나의 것. 어떤 세상이 펼쳐지더라도 그들 마음대로 정하게 뒺 말자. 우리 미래는 스스로 결정한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더 쏟아야 하든 상관 없다. 우리는 애쓰고 또 애쓸 거니까.
약속 하나 하자. 우리 같이 잘 살아나가자. 누군가 너를 사랑해. 누군가 너를 사랑해. 누군가 너를 사랑해
누군가 너를 사랑하고 있어.
절대로 포기하지 마. 271
사실 나는 결혼제도야말로 근대적 발명이라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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