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바이 골목, 김종관

stri.destride 2017. 10. 11. 23:27

종종걸음으로 골목 끝을 향하는 많은 사람들을 지났고 가끔은 누군가 자신들의 사연을 들킨다 33 




봐왔고 기억에 있지만 언젠가부터 새로워진 길. 그곳은 그대로 있지만 다른 곳이 변했기에 결국 동물원이나 박물관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이고 누군가에게는 기억과 만나는 길이다. 45




새로운 거주자들은 다행히 지붕을 바꾸진 않는다. 대신 조용한 골목에 갤러리가 생겼고 맥주집이 생겼고 와인집이 생겼다. 조용함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손님이 된다. 하지만 변화 없이 산 사라들은 어찌 보면 그들의 고집 때문에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몇몇의 노인과 아이들이 그 골목을 떠났고 그자리는 조용한 모험가들이 메웠다. 저녁 무렵 골목에서 맡아지던 밥과 찌개 냄새는 사라졌고 대신 달큰한 술 냄새가 남았다. 그곳에는 아직 높지 않은 담으로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있는 벽들이 있다. 48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필운방이라 불리던 동네의 다른 명칭, 체부동과 적선동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낯선 지명이 될지 모른다. 아직은 옛 기록물에 있는 낯익은 지명들에 반가움을 느끼지만 자하문로 몇 길, 세종문화마을 등 새로운 지명에 익숙해질 이들은 옛날 지명에서 역사를 감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를 떠올려보면 누구누구의 터 보다 더 쓸쓸한 기분이 든다. 56




저 조용한 골목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의경들에게 내가 이곳의 거주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나는 함성 가득한 그 곳에 서서 의경들로 메워진 골목의 입구를 지나기 위해 지갑 속 신분증을 꺼냈다. 60



나는 그 즈음 사람을 읽어내는 사람들의 피곤함을 떠올리곤 했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나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과 별개로 타인에 대한 장단점을 보는 눈이 생긴다. 타인을 읽고 판단하고 경계한다. 냉철한 시야가 냉소적인 인간을 만든다. 히라키 또한 사람을 읽는다. 하지만 그는 경계가 아닌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을 읽었다. 한 사람의 편안한 기분을 위해서. 99




이파는 그러한 영화들을 프로듀싱하고 영화제를 통해 소개시키고 시네필을 만들고 누군가가 영화로 진입하는 문턱을 낮추고 있었다. 애국심. 점점 이질적이고 배타적이고 하나의 이기심으로 변질되는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그를 보며 떠올랐다. 연민하는 마음.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곳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교육을 하고 그들이 만날 수 없는 기회를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보다는 희생이 필요한 자리에 섰고,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 있는 다른 이들이 보다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교육자가 되었다. 147




나 또한 '분주한 도시의 곁에서 조용히 흐르는 이 길들에 또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길 위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도시의 새로운 설계자가 된 듯 만들어진 기억으로 길의 인상을 덧대어 보는 일이다. 이미 우리 옆에 있었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새롭게 발견할 수 잇기를, 그 장소에서 배우들이 걷고 연지하는 그 순간에 가졌던 바람이다.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