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정기용

stri.destride 2013. 4. 22. 15:42



서울 이야기

저자
정기용 지음
출판사
현실문화 | 2008-02-25 출간
카테고리
기술/공학
책소개
건축가 정기용 전집 시리즈《사람건축도시》. 이 시리즈는 정기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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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정기용

어릴 때부터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심이 큰 편이었다. 그런데 큰 꿈을 가지라는 어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은 서울 시내 곳곳의 장소들. 고등학교때부터인가 포탈들과 서울시에서 지도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하릴없으면 하는 일은 서울 시내 지도를 켜놓고 계속계속 탐색해 나가는 작업이었다. 여기엔 저수지가 있고 여기서부터는 주거단지가 끝나고 산을 넘어가면 아파트가 사라지고 여기엔 공장이 있고 등등.. 그리고 가끔씩 나는 낯선 폐허에 스스로 찾아갔고, 찾아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데로 빠져서 정말 한가한데로 빠지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드는데 날은 점점 어두워져서 눈앞에 보이는 파출소에 들어가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소를 묻기도 했다. 여의도는 온통 비슷비슷한 고층건물 뿐이어서 방향감각 자체를 잃어버리는 통에 한참 같은 곳을 빙빙 돌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람 기운 느껴지지 않는 주말의 여의도는 무섭더라. 너무 휑해서. 그나마 사람이라도 있어야 생물체의 기운이 느껴질 여의도에, 그 사람이 빠져나가니 너무 휑해서. 

창신동, 용두동, 신길동, 공항동, 방화동, 등촌동, 범박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창성동, 종로, 을지로, 혜화동, 명륜동 이런 낯설고 낯익은 이름들과, 고즈넉했던 삼청동이 사람들의 욕망으로 버글버글 들끓는 것을 보며 진저리 치며 가지 않게 되는 것과, 아름답다는 길에만 가면 사람들이 버글버글해서 저절로 가지 않게 되는 일들과, 그러나 평일 낮, 사람들이 나올 수 없는 시간대의 길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것. 서울은 내가 가장 긴 시간동안 지내 온 도시이고, 내가 많이 돌아다니려고 간간이 애를 썼던 도시이고, 그만큼 아름다운 도시다. 내가 가장 사랑하지만 그만큼 절망도 많이 했던 도시. 

어릴때부터 서울에 살았던 터라 서울 진입의 욕망이라든가 서울에 대한 동경이라든가 나는 그런게 없는 사람이다. 그냥 내가 어쩌다보니 이 곳에 살게 된거고, 주어진 것은 인식하기 전까지는 그냥 당연히 여기듯,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친가 외가 둘 다 지역기반이 딱히 없는 - 수도권 사람들 - 집안이다 보니 쓰는 말도 그냥 서울말. 대학에 와서야 그게 얼마나 큰 자원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당연하지..중고등학교는 그냥 동네 뺑뺑이로 쳐서 가는 중고등학교를 나왔으니까. 전혀 인식을 못했던거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는,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이 살고, 아름다운 풍경들도 많이 있고, 그러나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알 수가 없고, 그래서 번잡하고, 버글버글하고, 서울의 광경을 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의 미감은 흉측하기 짝이 없고 - 그런 점들에 대해서 꼼꼼히 짚어 나가는 책이었다. 도시, 도시계획, 건물계획, 건축을 할 때에 내가 짓는 건물의 아름다움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과의 어울림을 고려할 것. 그리고 '시간'을 사랑한 건축가...빨리 말하는 건축가를 보아야겠다. 


둘째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하에서 '수많은 동네들'속에 깃들어 있는 도시 서민들의 삶과 환경을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획일적으로 갈아엎는 일을 지양하고, 순환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하는 사고가 필요한 때임을 서로가 확인하는 일이다. 균형 이론을 내세워 서민들의 평화로운 정착지를 무조건 재개발 재건축의 기계 속으로 집어넣고 다양한 삶의 터전들을 토지 자본 소유자들의 욕망대로 균질화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85쪽


그리고 끝으로 도시에서 지속된 가치 있는 장소와 오브제, 도는 길과 건축물, 또는 나무와 물길과 같은 것들에 내장된 시간의 의미들을 재평가하고 집단 기억의 징표들을 보존하고 축적시키는 것이다. 85


이제 그들은 아버지 세대들이 단절시켜온 공적 영역을 개척할 사람들이다. 진정으로 잘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왜 사는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 세대들이다. 지난 시절, 개인이나 가족이 잘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나머지 그들이 구축한 삶의 형식은 천민자본주의로 귀결되었다. (중략) 이제 분열된 개인, 불신하는 개인들을 새롭게 통합하고 믿음을 갖는 이웃들로 만들어내는 영토가 필요한 때이다. 115쪽


둘째로 한옥은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서울과 같은 풍토에서 만들어낸 보편적인 주거 형식이다. 전통적인 사회의 가치와 삶을 담아낸 공통의 형식이다. 규모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계급을 넘어서는 건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렇게 많은 자재와 기술이 넘쳐나는데도 이 땅에 적합한 보편적 주거 형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123쪽


공원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구조물들은 모든 정수장의 콘크리트 수조들로부터 유래하였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페인트칠도 하지 않은 시멘트의 본래 모습 그대로다. 공원 조성 과정에서 수조의 덮개가 뜯어졌거나 절단된 모습, 때로는 물때 묻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녹색 기둥의 정원에서와 같이 콘크리트 기둥들이 잘린 채 서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녹색 풀과 나무로 넘쳐나는 풍경에 사로잡혀 회색의 콘크리트를 저주하지 않는다. (중략) 그러나 건축가라면 시멘트나 콘크리트라는 물성을 도시를 비판하는 용어의 대명사로 등장시키는 무식함을 용납할 수 없다. 콘크리트는 회색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모든 콘크리트가 같은 회색은 아니다. 콘크리트는 거푸집의 형상과 재질에 따라 표면이 상이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시간의 흔적을 머금을 줄도 안다. (중략) 선유도 공원은 바로 콘크리트의 물성에 내재하는 내구성과 구조적인 장점, 거기에다 물을 담았던 기억과 흔적을 시간으로 붙잡으둘 수 있는 화학적, 물리적인 반응들을 최대로 재활용하여 그 자신의 존재만이 아니라 생명의 풀들을 키워내는 그릇으로 작동하고 있다. 138-9쪽


시민들도 근대 산업의 폐허들을 '유적'으로 격상시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동의했다. 이런 사례는 농경시대나 전통사회의 유산들만이 기념비나 유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만든 산업의 '쓰레기'도 '기억'과 '유적'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입증해준다. 149쪽


강가에 도열한 아파트들은 바로 한강의 이런 풍경을 독점하려는 욕망의 또 다른 풍경이기도 하다. 남보다 오랫동안, 그리고 먼저, 어떠한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한강의 순간들을 포착하려는 저 눈빛들의 탐욕스러움, 그 탐욕들을 모두 녹인다고 강이 되진 않는다. 그들은 다만 강을 바라볼 뿐이지 물이 되진 못한다. 159쪽


결국 문화도시란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어온 삶속에서 문화적인 맥락들을 짚어내어 그 길을 열어주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비록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문화도시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도시란 문화도시라고 할 수 없다. 171쪽


전통적인 사회에서와는 달리 현대 건축운동의 핵심 속에는 건축의 도구적 의미가 너무 확장된 나머지 권력이라든가 이념과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 나아가서는 '공동의 기억'을 수행해내기에는 역부족인듯 하다. 특히 사람들의 심성이 그들의 건조 호나경에 대하여 부여하는 가치가 일치하지 않으며, 파편화되어있는 지금 소박한 생각으로 떠올리는 것들이 쉽사리 상징 대열 속에 끼어들기는 어렵다. 180쪽


불량주거지개발사업으로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달동네'들이 거의 다 사라져가고 있다. 봉천동에도, 옥수동에도, 금호동에도, 아주 옛날 상계동에도. 무수한 재개발사업으로 또 얼마나 많은 도시의 흔적들을 지워버렸는가? 조합주택을 짓는다고 또 얼마나 많은 조합원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가? 사라지는 것은 땅에 썼던 도시의 흔적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그들의 기억이다. (중략) 개발지상주의 도시의 역동성은 우리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모든 부분을 철거를 기다리는 폐허처럼 만든다. 아주 온전한 폐허에서 도시의 일상은 지속되고 있다. 207쪽


이러한 개발의 다이너미즘은 어디서에서 연유하는가? 그러한 이유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자본의 논리이다. 땅과 집은 이제 더 이상 터와 거주의 공간이 아니다. 자본일 뿐이다. 자본으로서의 기능만이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소유하는 권한을 한시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 고유한 이름을 가지는 존재이다. 꽃이나 나무, 닭이나 돼지가 집을 소유하지는 않는다. 둘째, 그것은 역사, 기억이나 삶의 절박함에서 오는 인간적인 매력이라는 의미가 거세되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들의 '의미'는 소멸되고, 그것에 대체된 지고한 의미는 화폐일 뿐이다. 이에 대응할 유일한 '의미'의 힘은 오로지 '공공성'을 확보하게 하고, 그것을 지시하거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208쪽


그들이 4년 혹은 6년을 지나온 대학생활을 기억하는 곳은 의외로 건축가나 도시계획가들이 의도하는 지점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곳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이 중요하다. 서북향을 향해 항상 석양을 마주하는 학내는 낮 동안 대체로 어둡다. 적절히 어두운 실내에서 잊지 못할 기억이 생성되고 있는지 모른다. 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