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이후의 삶,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stri.destride 2013. 4. 10. 15:26



후쿠시마 이후의 삶

저자
한홍구 지음
출판사
반비 | 2013-03-0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후쿠시마 이후 우리는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역사, 철학,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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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에관한 한 비전문가-사실 역사, 철학, 예술에 조예 깊은 사람들-들이 모여서 후쿠시마 사태 이후를 성찰한 일년 여 동안 이어진 좌담의 기록. 좌담 장소는 후쿠시마, 합천, 서울, 도쿄, 제주, 오키나와였다. 후쿠시마는 원전사고가 일어난 곳이니 명시성이 분명한 장소일 것이고, 합천은 원폭피해자들이 많이 모여서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 원폭2세들에 대한 보상도, 인식도 지금도 거의 없지만 - 오히려 원폭 2세들이 살아가며 그 점을 숨기려 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 그래도. 그리고 서울과 도쿄, 4*3사태가 있었던 제주, 일본 내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가 있는, 일본이 동화 정책을 펼쳤던, 오키나와다. 


평화라는 것이 단지, 그 자리에 앉아서 나의 마음이 한없이 평온하기만 한 상태를 평화라고 생각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전략을 고민하고, 국가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는게 이 책에서 말하는 평화의 의미에 가깝겠다. 원래 서경식씨 글을 좋아했고 한홍구씨는 이름만 들어왔고 다카야시 데쓰야씨 같은 경우는 거의 모르고 있었는데 ... 이 책 덕분에 한번에 세 명의 사람을 알게 되어서 좋구나, 하는 점. 


책의 부제는 '역사, 철학, 예술로 3·11이후를 성찰하다'인데, 사실 대담 인원들이 각각 자신있어하는 분야를 두드러지게 부각시키며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를 했다는 점에 있어서...부제만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면 실망할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술에 대해서 기억나는거라고는 캐테 콜비츠..에 대해 언급한 대목과 그 외 두어 대목 밖에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동아시아 전반적인 정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러한 정세가 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맥락을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국가 일본'의 입장에서, '일본인'의 입장에서, '디아스포라의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동아시아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구간이 더 자주 보였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현대사적 지식이 매우 얕은 편이고, 정치-안보-분야에 있어서는 더더욱 얕은 지식을 드러내는데...단어마다 주석들이 상세히 달려 있다는 점이 참 좋았고, 그리고 그 분야의 이야기를 전문용어들만 사용해서 풀어낸 것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는 느낌. 물론 이게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씌여진 글이 아니라 대담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가능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 


결국 이제 나에게 남은 질문은, 평화를 깨뜨리려는, 폭력을 불러오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 어떻게 사람들이 서로 연대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인듯. 책에서, 후쿠시마 사태와 더불어 대중의 외면을 받는 현재의 운동의 접근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든가 하는 대목도 나왔던 것이 반가웠다...ㅠㅠ 



'후쿠시마사태'라고만 하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피해자이긴 하지만 각 피해자들은 다양한 고통을 안고 있으므로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봐야 합니다. 후쿠시마 사건이라고 포괄적으로 말해버리면 내부의 다양성, 즉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고통의 차이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p32

고통의 연대는, 말은 그럴듯 하지만 현실적으로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고통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연대를 가로막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p88

야마시타 이치 

"방사능 피폭 안전 기준치, 즉 얼마만큼 방산으 물질을 쬐어야 안전한지 또는 위험한지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국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나도 모두 일본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국가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도 했습니다. p56

많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올바른 판단을 이야기 하고 주민들과 힘을 합치는 것이 탈핵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57쪽

핵우산: 핵무기가 없는 나라가 자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 의존하고 있는, 핵무기 보유국의 핵전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제와 오늘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에 갔었는데, '평화의 초석'이나 각 현에서 세운 위령비를 보고 전쟁에서 죽은 이를 국가로 '호명'하는 장치는 국가주의의 필수 불가결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있어서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는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오키나와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타자지만 그 나라에 의해 헌정되거나, 호명됨으로서 국가주의적 사상이 관철되는 모순 속에 있습니다. 222-223쪽

엄연히 피해자가 살아 있고, 피해자의 고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가해자를 대표하는 사람이 가해를 정당화하면서 피해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역사학자로서 '치유'라는 말을 안좋아합니다. 치유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치유의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기 때문에 상처가 최소한 악화되지 않게, 아픔과 고통을 안은 채 잘 관리하면서 살아가고 이쓴 사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동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208-209쪽

우리가 당사자로서 직접 경험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역사는 물론, 그것을 계기로 다른 사건에도 상상력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연대하는 것, 이것이 이 세계적인 기억의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자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 209쪽

즉 유족이란 희생자, 죽은 자를 대신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족이란 '가장 가까운 타자'입니다. 그러니까 죽은 이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유족의 감정이 대표될 수 있다는 점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면, 유족의 감정을 이용해 시민을 통제하려 드는 국가에 이용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가족이나 혈연의 연장에 기초한 국가관에 환원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198-199쪽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허구의 위령비', '괴이한 국민적 상상력이 가득 차 있다' 199쪽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은 회복적 정의의 실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돈이 풀리면서 진실 규명 운동의 대의와 진정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가해자 집단이 철저한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을 막기 위해 돈을 풀어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경우, ㅇ이런 문제가 더욱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지요. 193-194쪽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면 일본과 연을 끊고 일본을 버리면 되지만, 그것이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일본 안에서 일본을 변화시키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방법도 잇지만 이 역시 힘든 길일겁니다. 일본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근대를 통해 형성된 일본의 아이덴티티를 흔드는 것이니까요. 240쪽

그러나 패배가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린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희망이라고 한다면, 루쉰 식의 히망이겠지요. '희망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생겨난다'고 얘기한 루쉰처럼 다시 한번 절망 같은 희망을 떠올려보는 것, 그것이 동아시아의 근대에 볼 수 있는 희망의 모습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59쪽(인용기호 안은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

"평화를 실현하려면 대중들이 원전을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아직 원전은 오늘의 문제가 아닌 내일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사고가 터지면 곧바로 오늘의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심지어 사고가 터져도, 사고가 터진 그 지역의 문제로 국한되는 악순환이 있는 것 같습니다" 258쪽 


덧. 책 디자인이 무척이나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