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었다. 그제야 그는 그녀의 표정이 마치 수도승처럼 담담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치게 담담해. 대체 얼마나 지독한 것들이 삭혀지거나 앙금으로 가라앉고 난 뒤의 표면인가, 하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시선이었다. 93
말을 하지 않는 여자들, 밥을 먹지 않는 여자들, 식물이 되어버리는 여자들, 꿈을 꾸는 여자들, 눈이 되어버리는 여자들..한강의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대개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면서까지 강렬하게 무언가를 거부하곤 한다. 그 여자들이 여전히 내 곁에서 유효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10년만에 다시 읽고서도 알았다. 평생 그런 여자들과 함께 할 삶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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