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반가워. 우리 자기를 위로해줬다니 고마워서 오늘 초대했지."
맛난 것을 실컷 먹고 나오며 용돈까지 받았다. 내가 모르는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신기했다. 최성자네를 따라 용산역, 이태원, 대한극장 뒤에 살고 있는 여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몸 파는 생활이란 것도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고, 선입견도 점점 없어졌다. 77
1995년, 경기도여자기술학원에서 불이 났다. 옛날에 하던 식으로 밤에는 쇠통을 채워 놓고 억압적으로 가둬두니까 결국은 불을 지르고 집단 탈출을 하다가 못 빠져나오고 죽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 대통령이 몇이나 바뀌어도 수십 년 동안 보호소라는 구조 속에서 소장끼리는 연줄 연줄로 다 통해 먹었던거다. 이런 것들이 뒷골목에서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과 기자들이 몰려왔고, 보호소는 난장판이 되었다. 기자들은 빠져나가지 않은 여자들에게 묻고 다녔지만,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여자들이 정신이 없기도 했겠지만 사감과 선생들이 남아 있는 여자들을 따라다니며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81
그때야 알 리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윤락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말이다. 몇 해 뒤에 그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정부가 금지해놓고도 여자들에게 성병 검지을 받게 하고, 성병이 있는 여성은 '윤락'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아닌가. 검진증은 클럽에 일하러 갈 때면 꼭 지녀야 하는 '귀중한'것이었다.
"재수 더럽게 없다. 보지가 내 보진 줄 알았는데 나라 보지냐." 105
어떻게 의사 소통을 해야 할까. 날마다 술먹고 악을 쓰며 사람을, 세상을 그리워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오니 나는 서툴렀고 얘기할 수 있는 통로도 많지 않았다. 기지촌 연극이라도 해보고 싶어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여성 문화 단체 같은데 가서 연극 얘기를 들어보면, 무슨 어려운 영화나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마광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건 우리 같은 밑바닥 삶과는 별 관련도 없고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얘기들이었다. 255
사실과 진실이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 사회나 언론 속에 비춰질 때 감수해야 할 몫이였다.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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