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감학원 생존자 구술집. 아직도 국가의 야만을 이해할 수가 없다. 국가의 야만이라고 다섯 글자로 쓰는건 어렵지 않지만 수천 수만명의 잃어버린 삶은 누가 되찾아다주나..
여덟 살, 아홉 살 그런 쪼끄만 애들. 그런 애들이 집에 가겠다고 울다가 얻어터지는걸 하루이틀 본 게 아니에요. 때리는 것도 따귀 정도 때리는 게 아니라 엎드려뻗쳐 시켜서는 엉덩이를 때리죠. 어떤 아이는 퍼렇게 멍이 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살이 터졌어요. 그러면 며칠 동안 앉지도 못하고 고생을 해요. 지금 그 또래 꼬마들을 보면 너무 예쁜데, 저 어린 것들이 그렇게 맞았다고 생각하면 한번씩 불쑥 분노가 치밀어요.
저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평생 삶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돌아갈 수가 없잖아요. 버스 한 번 잘못타서 조금 돌아가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르잖아요. 열차에서 장사하면서 정말 많이 맞고 살았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억울한 게 선감학원 들어간거에요. 열차에서 장사했던 건 그래도 내가 뭔가 얻으려고 하다가 얻어맞으 ㄴ거니까 그나마 덜 억울한데 선감학원은 그렇지 않잖아요. 내 뜻이 전혀 개입된 게 아니잖아요. 32
일부러 굳이 잊어버리려고 노력한 건 솔직히 없어요. 국가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너네는 빨리 잊어버려라.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빈곤하게 만들어놨어요.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한테는 마음의 상처 이런거 사치에요. 살아가는 자체가 고달프잖아요.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매진하다보면 다른 건 다 잊어져요. 국가가 그건 기가 막히게 해놨어. 아주 빈곤하게 만들어서 이런 거 저런 거 생각 못하게 한 거에요. 먹고 살기 바쁘고 거기 집중해 살다보니까 자동적으로 잊혀지잖아요. 그렇다고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까, 나는? 83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했고,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하여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엔 선감학원에서 지낸 친구들이 몇 있다. 종종 만나지만 선감학원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186
책에서 말하는 출소자의 어려움은 선감학원이나 형제복지원같은 강제수용소에서 성장한 김창호의 어려움을 설명하기에도 꼭 맞는 듯 보였다. 삼중고란 첫째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 둘째가 신체적 질병, 셋째가 알코올중독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병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회적 관계 맺기에 취약한데, 이유는 이들이 오직 교도소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는 죄질이나 수형 경력, 주먹, 나이 등에 따라 서열이 명확하게 정해지고 만사가 서열로 굴러간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는 역할이나 능력, 외모, 취향, 규범, 명분 등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을 염두에 두고 처신해야 하는데, 일반인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이것들이 출소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정도로 까다로운 과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출소자들은 회사에 취직해도 한 달도 못 견디고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242
모든 게 내 뜻대로 될 때, 그땐 신이 필요하지 않아요. 254
주변의 관계까지 파괴하는 이 폭력은 결국 자기 자신 또한 심리적으로 파괴하기에 이른다. 유년 시절 가장 친밀한 관계였어야 할 동료들을 인간 이하로 대한 경험이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애착과 신뢰의 감정이 싹트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의 도덕적 원칙을 위반하고 인간에 대한 기본 애착을 배신하게 될 때"피해자는 심리적으로 완전히 통제당한다. 이는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수치심과 죄책감, 분노와 불신, 그리고 자기혐오를 만들어낸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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