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데트 씨와 아들들1 2, 오르한 파묵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1, 2 오르한 파묵
파묵의 첫 소설이 드디어 번역되었다는 말에 신이나서 빌렸는데 생각보다 금방 읽히고 문장들도 꽤나 짤막짤막 한 것이 매우 신기하기도 하고 비교적 최근작들과는 다르게 (내가 지금까지 읽은 그의 최근작은 '눈'이다) 확실히 '젊다'는 느낌도 들고 .... 파묵 책의 한국어판 번역가는 계-속 이난아씨인듯. 여하여튼 나는 매우 재미있게 이 책을 읽고 있다 진짜 후루룩 읽은 느낌. 파묵 책의 매력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대를 지나서도 단지 ㅇㅇㅇ씨의 아들/딸 이 아니라 그 아래 세대의 인물들 끼리 나름대로의 서사를 가지고 엮인다는 점에 있는듯 하다.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을 때는 그게 잘 매치가 안되서 고생했는데, 아마 이건 내가 그 이후로 소설을 계속 읽으면서 한결 나아진 점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직도 결말이 상상이 안간다는게 (아마 이건 파묵 책의 일관적 매력이 아닐까 싶지만) 좋다. 근데 사실 나는 결말을 예측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거같음...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그냥 내가 밀고 싶은 결말을 계속 밀다 보니까 작가의 의도를 파악 못하는걸까.
파묵의 책 속에서 끊임없이 나오던 '동양과 서양, 주변부로써의 동양, 그 동양에 자리한 사람들'이라는 모티브는 첫 소설에서부터 나오던 주제였다.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 애써 회피하려는듯한 모습을 보이는, 유럽식 가정을 이루려던 제브데트 씨, 그러나 제브데트씨의 부인은 파샤의 딸이었고 그 또한 명절마다 사원에 가고 장례식도 사원에서 치른다는 점, 그러나 그 뒤의 책에서 나오는 인물들 중에는 그 처럼 타협적인 사람은 덜한 듯 하다.
함께 출판된 <소설과 소설가>를 읽기 위해서 겨우겨우 <내 이름은 빨강>을 빌렸고, 그 책을 다 읽은 뒤에야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2>권을 읽지 않을까 싶다.
1권
"능력 없는 파샤 밑에 들어갔다가는 고생만 하고 실력도 발휘할 수 없으니까. 그 아이는 삶을 아주 사랑하는데 말이야!" p90
"내가 조금 전에 마녀 흉내를 낸건 이해하지도 못했어. 나는 내 아들이 그렇게 되는게 싫어, 알겠어, 제브데트? 내 아들이 거짓말을 믿지 않았으면 해. 내 아들이 이성의 빛과 자기 자신을 믿었으면 한다고 ...... 이성의 명징함을 ....... 그 애 이름을 괜히 지야*(빛)라고 지은 게 아냐!"
p126
세관 건물로 들어가는 순간 이곳이 터키라는 걸 절감했다. 한동안 느끼지 못했고, 추억마저 겨우 기억해 냈던 이상한 애정이 마음속에서 솟아났다. p170
하지만 잠시 후 제브데트 씨는 자신이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제브데트씨의 관심을 끄는 건 그가 설명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가 거실에 퍼뜨린 활기와 젊음이었다. 사람들은 유럽에서 돌아와 유럽에 대해 설명하는, 건강하고 영리한 젊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방을 채운 그의 젊음에 매료된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자기에게는 없지만 외메르에게는 풍족한, 알 수 없는 어떤 가치를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비밀스러운 가치를 찾아 끄집어낸 후 자신도 그걸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p193
"여전히 페스를 쓰고, 하렘이 있고, 히잡을 두른 나라로 보죠 .... ."p212
명절을 축하하는 이스탄불에는, 대가족들 사이에는, 따스하고 넓은 거실에는, 거리를 두고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하루를 돌아볼수록 뭔가 깨부수고, 뭔지 알 수 없는 질서를 뒤집어엎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이 게으르고 느리고 안일한 만족에, 열정 없는 가족생활에 나를 내맡기지는 않을거야. 그 대신 뭘 해야 하지?'
그는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p217
"가끔 얘기나 나누러 그 사람에게 가지. 그러다 보면 잘 시간이 되고 .... 저녁은 이렇게 지나가! 여기선 시간이 아주 천천히, 서서히 흘러..... . 눈이 내리지 ..... . 아침에 창밖을 보면 일어나고 싶지 않아 .... 담배를 피우고 ...... . 가끔 술도 마셔 ...... . 뭐 이런 것들이야 ..... . 이곳의 삶은 그래. 좀 있다 일어나서 수프를 먹자. 라스티냐크, 파티흐의 방도 이래..... . 자, 일어나, 수프 먹자. 그런다음에 편히 자 !" p453
날씨는 추웠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혹독한 추위는 아니었다. 사람을 강하고 활동적이며 단호하게 만드는 추위였다. 그들은 함께 터널을 향해 걸어갔다. 발밑에서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 들려왔다. 약간 가파른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갔다. 레피크는 눈이 빛에 익숙해지도록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 모든 것을 감싸는 깨끗하고 넓고 반짝이는 하늘, 푸르고 잠잠하고 깊은 하늘이 있었다.
'난 어쩌면 저것 때문에 여기 왔는지도 몰라. 산산이 부서져서 내 머릿속에 흐트려져 있는 뭔가를 저 빛, 저 하늘이 합치시켜 줘서 내가 편안하고 평온하게 느끼는 것 같아. 평온함!'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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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만 해도 행복해 보이던 니갼 부인이 삶에 진력이 났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어머니가 의자에서 뒤척거리는 모습과 찻잔을 잡는 모습을 처음으로 주의 깊게 관찰하자, 자신은 잘 교육받고, 교양 있고, 부유하다는 의미인 행동이, 독일인에게는 하렘과 동양, 오스만제국 시대의 여인 같은 흥밋거리로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p21
하지만 난 선의를 가진 사람이야. 난 뭔가 하고 싶어 뭘 하고 싶지?' 그는 헤르 루돌프와의 논쟁을 떠올리며 "계몽을 가져오고 싶어!"하고 중얼거렸다. p163
"거기 가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군. 나도 그들을 동정하오. 예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려고 했소. 하지만 감정에 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오. 당신도 배워야 하오. 그렇게 돼야만 당신이 쓴 얘기가 가치를 얻을 거요!" p185
"전 이 정부가 아니라 이 나라가 잘 되길 바립ㄴ디ㅏ!"
"알고 있소, 물론! 하지만 당신은 그것이 분리되어있지 않다는 걸, 나아가 정부가 우위에 있다는 걸 모르는군요" p190
"그 말! 세상에, 정말 어린애 같고 순진한 말이야! 난 이해할 수 없어. 네가 그 말에 얼마나 매여 있는지, 그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했다는 건 생각할수록 놀라워. 그러곤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비난하지. 하지만 어쩌겠어. 이해할 수 없는데." p235
"그 광명이라는 건 무슨 말이야?"
"참 나, 그러니까 광명의 날, 뭐 그렇게들 말하잖아! 너희아버지도 그 말에 매료되셨던 것 같아. 광명, 암흑, 빛... 그래, 무지에 관한 건 전부 그 단어로 이해하려 했던 거지...." p513
나는 솔직히,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세 세대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랐나보다. 두번째 세대에 해당하는 외메르, 무히틴, 레피크가 결국 자신들이 젊었을 때 가졌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하겠지만 - 각기 다른 방향으로 좌초하는 것을 보았을 때....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직도, '나보다 앞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향해 떠나 결국 '성공한' 사람'을 그렇게나 바라고 있는걸지도 모르겠다...예전에 아빠랑 대화하다가, 내 바로 위 선배 세대중에는, '성공한 선배'가 없다고, 우리에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을때 그러면 성공한 선배가 누구냐고 아빠가 물었고, 내가 대답했던 성공한 선배라는건 결국 '이석기'나 '김재연'인 거냐고 하면서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혁명을 꿈꾸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 말을 들었는데 ;;;;;;; 이런 말을 들으면 아 확실히 이 사람은 나와 다른 길을 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나 또한 내가 앞서 '롤모델'로 삼을 사람을 찾고, 그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는거였나보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남....
내이름은 빨강을 중간에 다 읽고, 이 책 2권을 읽기 시작했더니 이 책이 너무 건조하고-_- 그덕에 읽기 힘들었는데 .... 대략 이 문학을 사실주의 문학이라 분류하고 내이름은 빨강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라면 ... 대표적 사실주의 문학 고전들은 또 어떻게 읽나...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오늘 서울사진축제 전시에 다녀왔는데, 40년대부터의 서울 사진을 보면서, 70년대 서울이 참 지금의 이스탄불과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마 이 책을 중간에 읽다 말고 다녀와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