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stri.destride 2012. 10. 6. 23:38

작품 해설이 참 좋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삶의 전반에 애정이 가득 담겨있는거같아서, 그리고 사실 (^^) 말이 어렵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나는 평론 읽는걸 엄청 못한다. 고등학교때 문학시험은 항상 잘봤는데 (..) 읽으면서 "아이고 이런 찌질이가 있나.."싶었으나 사실 나랑 비슷한 면도 일부 있었기 때문에 슬쩍슬쩍 찔려가면서 읽었다. 주인공은 정말 찌질하지 싶다가도 안쓰럽기도 하고, 역자가 스무살 때 이 책을 처음 읽고 자기 나름대로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썼다는데 그래서 유난히 인물이 이렇게 길고 긴 문장 사이에서도 생동감을 잃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 책 읽으면서 .....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 굉장히 고루한 ........ 반성을 ... 그런데 존중하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일까? 




비웃는 거요? 그렇다면 몹시 기쁘군. 나의 농담은, 여러분, 물론 품격도 떨어지고 변덕스럽고 앞뒤도 안 맞는 데다가 자기 불신감마저 가미되어 있소. 하지만 실상 이건 내가 나 자신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오. 도무지 의식이 발달한 인간이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겠소?  p28




우리 시대의 점잖은 인간은 누구나 겁쟁이이자 노예이며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정상적인 상태니까 말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나는 깊은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렇게 되도록 생겨먹었다. p73




하지만 내가 정말로 광분한 것은 이러고서라도 갈 것임을, 일부러라도 갈 것임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기 가는 것이 미련한 짓일수록, 또 무례한 짓일수록 더더욱 갈 것이란 말이다. p105




맙소사, 이것이 내가 어울릴 만한 집단이란 말인가! 나는 생각했다. '또 나는 왜 이런 놈들 앞에서 바보 노릇을 자처하고 있는가! 그나저나 페르피치킨 녀석의 짓거리를 참 많이도 참아 주었다. 저 등신들은 나를 위해 이 식탁에 한자리를 마련해준걸로 무슨 큰 선심이라도 쓴줄 알지만, 실은 저들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저놈들한테 선심을 쓴 것이란 말이다. 그런 것도 모르는 주제들이! '비썩 말랐군요! 그 복장은 또 뭐요!'라니. 오, 바지는 정말 왜 이 모양이야! p119




나는 염증을 느끼며 몸을 돌렸다. 이미 냉정하게 조곤조곤 말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느끼기 시작하면서 열을 올렸다. 나는 이미, 방구석에서 열심히 곱씹은 나의 성스러운 이념 나부랭이를 피력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뭔가가 갑자기 내 안에서 불타올랐고 어떤 목적이 '현현'했다. p144




"이 날렵한 말장난 하곤, 사실 후작쯤은 되어야 나오는 여유 아닌가?"나는 편지를 다시 읽어보며 흐뭇해했다. '이것도 다 내가 지적으로 성숙한 교양인이기 때문이다! 딴 사람이 내 처지였다면 어떻게 빠져나갈 궁리도 못했겠지만, 나는 이렇게 용케 빠져나와 새로운 재미에 빠져 있으니, 이게 다 내가 '지적으로 성숙한 현대의 교양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제 일은 모두 그야말로 술 때문에 일어난 셈이다.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