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군대의 장군, 이스마일 카다레

stri.destride 2012. 8. 21. 13:28

이 옛 전쟁들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장군으로서의 자질 때문이 아니라 우수한 현대식 무기 덕분이었으니까. 그는 곧 최근에 일어난 전쟁을 떠올렸다. 다양한 해안에 상륙해 여러 도시를 포위했다. 그의 병사들은 노르망디 해안에서 시작해 한국의 38도선을 넘나들었다. 그는 끔찍한 베트남 정글 속으로 병사들을 투입했다가 무사히 데리고 나온다. 패배한 것으로 역사에 남아 있는 수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끈다. 이 승리는 그가 능수능란하게 군대를 이끄렴 결코 그들을 운명에 방치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지휘가 무엇인지 안다. 실제로 그는 산악전에 관한 연구논문을 쓰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용감한, 아 너무도 용감한 병사들이 있었다. 한데 그들이 그렇게 용감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잃을게 없기 때문이다......p158-159


"그래도 제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우리 군인들의 관이 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갈 때 우리의 죽음이 그들의 삶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줄 작정이었죠. 그런데 이 곳에 도착하고 나니 상황은 딴판이었습니다. 신부님이 저보다 잘 아실 거예요. 맨 먼저 자부심이 사라졌고, 곧이어 그 어디에서도 엄숙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환상들이 깨졌죠. 이제 우린 전쟁이 낳은 불쌍한 어릿 광대가 되어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서 수수께끼같은 야유의 시선을 받으며 떠돌고 있어요. 이 나라에서 싸우다 쓰러진 사람들보다 더 가련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부는 침묵을 지켰고, 장군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p170


한 나라의 장군과 신부가 알바니아로 전쟁떄 죽은 군인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떠나고, 그곳에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인줄 알았더니만...생각보다 책이 두꺼운건지 문장이 두툼한건지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뒤에가면 알바니아 병사들이 다음날 행사를 위해서 야밤에 행진을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죽은 군대들이 살아돌아온 환영을 보여주는줄 알고 소름돋았네.. 전쟁에 대한 진지한 조소. 발칸반도 영화나 문학작품들을 조금씩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은 낯선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