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 조은

stri.destride 2012. 8. 10. 19:46

내가 이 가족을 통해 빈곤 재생산을 연구한다고 말한 적이 없음에도 이 가족중에서 학력이 가장 낮은 덕주 씨는 인터뷰때마다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단어들을 골라내고는 한다. 스무 살때도 자기 집의 가난에 대해 '돌고 돌고 또 돌고'라고 말했었다. p12 




이러한 언어의 계급적 차이는 연구 논문을 쓸 때에는 내용을 적당히 요약해서 쓰고 직접 인용하기보다는 풀어 써서 그 심각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다큐 편집 과정에서 이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단적인 예가 그들의 '말'을 잘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긴 인터뷰나 생애사를 화면에 잡았을때 계층이 다른 청중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략) 많은 시간을 들여 독해를 했는데도 오독이 여러 군데 있었다. (중략) 이는 단순히 오청의 문제라기보다 삶의 경험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p87


질적 방법에서 강조하는 '그들의 언어' 익히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 사회학자 벤카테시의 <괴짜사회학>에 나오는 현장 연구에서 연구자와 연구 상대자 간의 다른 언어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가 나온다(각주생략). 우리는 연구 상대자가 연구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연구 상대자들은 연구자들이 자기들만 아는 언어로 질문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다. p88-89




어떻게 '사생활'을 드러내는 일을 쉽게 할 수 있는가라는것이 다큐 상영회에서 가장 자주 제기된 질문인데 이는 '사생활'의 중산층적 편향성을 실감하게 했다. 중산창에게는 내밀한 '사생활'이 이들에게는 이웃이 다 아는 일상사인 것이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여진다는 것, 그들이 말할 기회를 갖는 것인 듯했다.(각주생략) p98


금선 할머니가 '포주 노릇했다'는 구술 생애사 녹취 부분을 편집하면서 넣을까 뺄까 한참 고민햇는데 그들 가족 중 누구도 이 장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때 난 처음으로 사생활이라는 것이 어쩌면 학술적으로 창안한 근대의 중산츤적 개념일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p98


사회복지를 전공한 한 관객은 이 다큐를 보면 그들이 왜 좀 더 절약하지 않는지, '속이 터진다'고 했다. 본인이 사는 동네에 중산층과 저소득층 임대 아파트가 같이 있는데 저소득층 아파트 추민들이 훨씬 많이 중국집 배달을 시켜 먹는다는 예를 들었다. p98




이 지역의 형성은 상품화되지 않은 토지, 즉 서울시 소유의 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지역 해체 뒤에는 이러한 공유지의 불하가 있다. 즉 토지의 비자본주의적 이용 방식에서 자본주의적 이용 방식으로의 전환이 바로 불량 주거지가 해소되는 방식인 동시에 도시빈민의 불량 주거지 퇴출 방식이기도 하다. p140




덕주 씨를 통해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우리가 흔히 '불량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특별히 불량하지도 악덕하지도 않은 아이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거의 즉흥적으로 돈이 없으면 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덕주 씨가 처음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은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걸려서였고 그 뒤로도 몇차례 수감당한 기록을 가지고 잇는데 덕주 씨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실제로 덕주씨가 중학교를 자퇴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본드도 하고 카드놀이도 하고 조직에 들어가기도 한 경력이 있는데 덕주 씨 자신은 그런 모든 것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 살아야 하는 아이들의 일상으로 이해했다. '불량소년'이라는 범주가 아니라 "어렸을 때는 다 그래요"라는 말로 자기 동네 아이들의 일탈을 설명했다. p228




그러나 덕주씨는 공소 시효가 지날 때까지 잡히지만 않으면 된다면서 얼마 안남았다고 피해 다녔다. 이런 일은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에게는 흔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초버이 되고 재범, 3범이 쉽게 되어 버린다. 덕주 씨가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을 때 피해다니면서 단 하루도 자기 먹을 것을 자기가 벌지 않은 때는 없었다. 그래서 사회봉사를 할 수 없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사회 봉사를 하냐는 것이었다. 




오스카 루이스, 산체스 아이들. 


맨몸으로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할머니 가족을 통해 보면 교회, 로또 복권, 생명 보험인 듯 하다. p277


빈곤층 여성들에게 가난한 가족으로부터의 피난처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시 가난의 덫이 된다. 사랑에 빠져 집을 나오는 이야기는 이 계층의 여자들한테서 되풀이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다. (중략) 가난하고 구질한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10대 때 남자를 만나 바로 '그들만의 방'을 갖고 동거에 들어가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곧 임신해서 아이를 낳거나 유산을 되풀이하다가 헤어지거나 아니면 사실혼 관계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살다가 남편 수입도 시원찮고 아이들이 조금 크면 부업을 시작한다. 가내 부업을 하다가 일거리가 없으면 노래방 가서 도우미 아르바이트도 한다. 가끔씩은 친구들과 스트레스 풀러 나이트에 간다. 거기서 어떤 눈길을 보내는 남자를 만나면 따라나선다. 새로운 '사랑'이다. 이들의 연애 각본은 ㅇ곧 이들의 빈곤 회로의 일부다. p293




금희 엄마가 특별히 예쁘거나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유부녀인 금희 엄마가 계속 총각들과 사귀는것도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들 계층에서 장가 못간 총각들이 넘친다는 것을. 금희 엄마는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돈을 받고 몸을 팔지는 않는다. (중략) 금희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로맨스 각본을 마지막 보루처럼 안고 있다. p302




이 연구를 정리하면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설명하는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를 가져오는 구조에 주목하게 되었다. 빈곤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빈곤이 있을 뿐이며 가난을 설명하는 데 가난 그 자체만큼 설명력을 가진 변수는 없다. '가난의 구조적 조건'이 있을 뿐이다. p304




금선 할머니 가족이 빈곤 문화때문에 빈곤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그들 가족의 빈곤의 출발선은 아니다. 빈곤의 출발선을 할머니로 삼을 경우 할머니의 생활양식에는 빈곤 문화로 꼽히는 절제 없음, 알코올 중독, 게으름...심지어 성적 문란 그 어느 것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다. 할머니의 빈곤의 시작은 한국 전쟁이었고 월남해서 집도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세 살, 여덟 살 짜리 아이를 데리고 혼자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스물여덟 살의 여성 가장에게 아무런 '과부 대책'이 없었을 뿐이다. (중략) 할머니 자녀들은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요령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빈곤 문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생활 양식이 나타났다. 이들은 부모 대에 왜 월남해야 했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중략)


그러나 이들에게 나타난 빈곤 문화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할머니 가족뿐 아니라 사당동과 상계동에서 만난 가난한 가족들의 생활양식은 모두 가난의 원인이라기보다 가난의 결과였다. 특히 이농한 대부분의 산동네 주민들의 생활양식은 '도시 속의 농촌적'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교육열, 부지런함, 개별화가 덜 된 가족주의가 주요 문화였다. 이들은 형제자매가 많은 가난한 농촌에 태어나서 서울에 올라와 열심히 일했고 가족에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임금이 너무 낮았거나 경기가 불안정해서 가정을 지키거나 가족을 건사할 수가 없었다. 철거 재개발, IMF, 금융 위기 등 구조적 충격이 왔을 때 이를 완화할 '완충 지대'도 없었다. 이들은 철거 재개발 정책이라는 자본주의적 공간의 재편에 바로 영향을 받았고 88올림픽 때는 일자리가 줄어 직격탄을 맞았으며 IMF때는 경기가 둔화되면서 바로 실직으로 이어졌고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는 카드깡으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주민 등록증을 빌려 주고 대포차나 대포 통장을 만드는 일에 가담하는 범법자가 되어갔다. P311-312


이들의 가난은 세계화나 금융 자본주의, 도시 공간의 자본주의적 재편같은 구조적 요인과 동떨어진 듯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삶은 바로 그러한 구조적 요인의 직접적인 충격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충격 속에서 그들이 살아 내는 방식, 곧 삶의 양식이 빈곤 문화라고 이름 붙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빈곤 문화의 핵심에 그들의 성과 사랑과 결혼 방식이 있다. 그리고 가족이 있다. 이들이 그나마 스스로 선택했고 또 선택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영역이다. 특히 대중 매체가 대량으로 유포하는 로맨스 각본은 이들이 손쉽게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각본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성적 문란'이나 가출, 이혼, 동거와 출산 등이 '가족의 위기'로 읽히고 빈곤을 재생산하는 빈곤 문화의 핵심 요소로 주목된다.  p313-314




한번쯤 더 이 가족에 대한 다큐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25년에 몇 년이 더해져도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될지 모른다. 그 점이 두렵다. 25년이 더 더해져도 그럴지도 모른다. p321





목차 


01. 두 세상을 오가다 - 밑으로부터 사회학 하기, 한가족 들여다보기


02. 가난 두껍게 읽기 


03. 산동네 달동네 별동네


04. 세상의 가난, 가난의 세상 - 바람을 그리다 : 가난의 앞날 


05. 가난이 낳은 가난 - '맨몸'으로 산다는 것, 가난의 자존심, 가난의 두께, '빈곤 문화'의 조건 






이제 거진 다 읽어간다. 이십오년간 한 가족의 생애사를 추적한 '문화기술지'


내가 했던 심층인터뷰들이 스쳐지나갔다. 주거실태조사를 할 때 느꼈던 아득함, 그냥 말 그대로 '이해가 가지 않는'지점들이 단순히 '그 공간의 특수성'때문은 아님을 실감하고. 결국 이 회로에 로맨스 각본이 끼여들어오는게 나만 느낀게 아니었구나 싶고.. '도시빈민'이 아니더라도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 로맨스 각본을 재현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다만 그 각본의 유입의 결과가, '동거, 출산, 유산, 낙태'등으로 바로 이어지는가 아닌가가 아마 ... 차이가 있지 않나 싶고. 


긴 호흡으로 풀어나간 글이, 좋다. 생애사인터뷰를 읽다/하다보면 자꾸 나도 내 생애사를 풀려고 하는게 여전하구나. 음...


저자는 이 가족이 '가난의 굴레'를 끊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하다가도, 그러한 '도움'이 가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경계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난 이런 일이 있을때 힘들었는데, '연구자'의 입장에서 서면 가능한걸까. 그런데 조교들도 힘들었다고 하니 (ㅎㅎㅎ) 왠지 위안이 되었다. 


'빈민에게 '안정적인 주거공간'이 제공된다면 가난의 굴레를 끊을 수 있을까'하던 의문이 이런 책으로 풀어나왔다는게 놀랍고, 감사하다. 하지만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스스로 얻는 일 자체가, 빈곤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에는, 의문이 드는구나.... 다들 그렇게 임대아파트가 대안인것처럼 말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