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지 않는다, 박희정 외

stri.destride 2020. 4. 18. 17:07

좀 더 많은 배려와 공적 지원이 필요했지만 어쩌면 더욱 중요했던 건 그를 존엄한 한 세계를 가진 사람으로 편견 없이 바라봐주고 얼굴을 마주 대해주는 것이었다. 20

믿어주는 게 참 중요한 거야, 그럼 다른 짓을 못 하니까. 21

우리가 시작할 때만 해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우리 나라는 아직 좋은 사람이 51%니까 그것 믿고 한 번 더 해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야. 지금도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울 형편은 안 되지만 이제는 애들도 컸고, 우리를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니 조금 더 쉬울 거다 그러고 가는 거야. 날마다 모자라지만 많이 모자라진 않아. 35

제가 애들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지 아세요? 대단하다는 말이에요. 처음에 들었을 때는 내가 정말 대단한가 싶고 그 말이 칭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너무 자주 들으니까 헷갈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소아마비 장애인이니까 남들보다 많이 느리고 못 하는 것도 있지만 엄마가 자기 아이 키우는건 다 똑같잖아요. 그런데 비장애인엄마들에게는 안 그러면서 장애엄마에게만 대단하대요. 121

그래서 집에, 시설에 갇혀 사는 장애인분들 만나면 늘 이야기해요. 부모 뜻 어기는 게 불효가 아니다. 그걸 어기고 나와서 당신이 더 행복한 삶을 살면 부모님이 변한다. 부모님은 스스로 바뀌는 게 아니라 당신이 바꾸는 거다. 나는 세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먼저 변하진 않아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변화시키는거지. 133

저는 살면서 사람 변하는 게 좋고, 지역 변하는 게 좋고, 그러면서 내가 행복한 게 좋아요. 엄마가 살면서 못 했던 것들, 억눌리면서 포기했던 것들을 딸인 제가 하길 바랐던 것처럼 저도 장애 때문에 갇혀 있던 시간들이 길었잖아요. 그러니 다른 분들도 저를 보고 용기 냈으면 좋겠어요. 136

'미친'사람들을 거리에 활보하게 두어도 사회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정신장애가 아니다. 정신장애를 두렵게만 바라보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협소한 인식이 진짜 문제다. 정말로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논의는 이것이다.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