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stri.destride 2019. 11. 27. 15:36

 

 

길모퉁이 중국식당이란 이름으로 나왔던 책의 개정판. 

 

"갈대는 우거지고 흰 서리가 되었네. 내 마음의 님은 물 건너에 계시다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길은 멀고 험하고, 물길을 따라 내려오지만 여전히 물 한가운데 있네"

시경을 읽다가 잠이 든 밤에 꿈을 꾼다. 가고 싶은곳, 가야 할 곳으로 가는데 다리가 어디에 묶였는지 도통 움직일 수가 없다. 버둥거리다 잠이 깬다. 깨어나면 어둡고 조용하다. 어디를 가려고 길을 나섰던가. 어디 그 사무친 것이 있다고 믿었기에 길을 나서서는 오래 집으로 가지 않는가. 그리고 여전히 물 한가운데에 있는가.... 나의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여행인가? 60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는 마음, 그리고 사월이다. 난만하게 피는 꽃, 두고 온 사람, 그 흐트러진 낭만의 마음 한 가운데에 등불처럼 나를 밝히느 ㄴ것들. 그런 낭만이 내 생애를 후리고 지나가며 어느 한 시절 좋이 술을 마시게 했던가. 173

 

그건 '나'의 한 부분이야. 내 속에 든 공포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그렇게 부르는거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시시각각으로 달려오는데, 그 공포를 우리는 피할 수 없어. 왜냐하면 내 스스로가 만들어내는거니까. 공포에 대한 환영이 빚어내는 공포인 게지." '그것'이라는 것. 내 속에 들어앉아 있는 공포, 내가 내 스스로에게 만들어내는 공포....

그 끝에는 죽음이라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건가.. 185

 

 

실은 나도 할 말이 많다. '이렇게가 아니라 저렇게 살고 싶었다'라든지, '그때 내 잘ㄹ못이 아니라 네 잘못이었다' 하는 것들. 내가 내 얼굴을 사납게 노려본다. 그래, 좀더 잘하고 살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꼭 그렇게 잘 살아야 되겠니?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무엇 때문에 사납게 주름 잡힌 상판을 들고 그렇게 잘살아야 하겠니? 이치를 따져가며, 잘잘못을 물어가며...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