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stri.destride 2019. 7. 8. 14:25

우리의 사랑법은 대도시의 모습과 비슷하다. 휘황찬란한 도시에 뿌려진 조명 불빛들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느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찬 대도시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적잖이 포개어진다. 인스타 피드만 보면 제법 화려해보이는 삶을 살겠지만 주말 밤의  종태원에서나 자유롭게 끼떨 수 있는 점도, 서로를 엮고 간섭하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로 가득찬 이 나라에서 그나마 대도시의 익명성에  기대서야 마음 조금 풀고 사랑할 수 있다는 점도, 그나마 사람이 많은 대도시에서나 사람 만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도.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연애사에 찬란한 대도시 서울의 구체적인 기물과 풍경들을 능숙하게 녹여낸다. 그 점은 박상영이라는 작가가 단순히  동성애자의 삶을 그려내서 주목받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가 자신의 다채롭고 확고한 세계를 구축해가는 유망한 작가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사랑이란 단어는 숭고할 수 있어도 연애라는 단어는 그렇게나 구질구질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면서 함구하고는 한다.  사랑한다고 울고불고 매달리고 내마음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기대했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 서러워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내밀한 관계에서 술이나 진탕 퍼마시고 눈물을 첨부파일인양 뽑아내며 소통 가능한 것들, 대개의 우리는 그런 것들이 언젠가  잊혀지거나 사라지기를 바라며 목덜미 아래에 꾹꾹 눌러 담아 놓는다.

 

 책을 펼치고 있는 동안 작가가 그리는 사랑은  보통의 이성연애처럼 설레고 구질구질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연애가 이성애가 아니라는 것을 노련하게 쉬지 않고 일깨워준다. 택시에서  그들은 무릎 위의 얹어둔 코트 아래에서 손을 잡는다. 군의관은 주인공에게 다짜고짜 “탑이냐 바텀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제법 복잡한 맥락과 일부 맹목적인 공포로 자리 잡은 “카일리”가 함께한다. (물론 “카일리”는 남성  동성애자,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MSM-male sex with male이 고위험군일 뿐 모든 사람에게 발병할 수 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비극적인 측면들을 작가는 새침하게 짐짓 무심한 척을 하며 독자들 앞에 던져놓는다. 어쩌면 이러한 역설적인  모습은 우리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의 삶과 꼭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큰 환희와 가장 큰 공포를 동반하는 커뮤니티와의 만남이  그렇고, 커밍아웃을 크게 하지 않은 상태라면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사랑에 기반한 삶을  살더라도 그것을 결속해줄 제도의 부재 앞에 가끔씩은 서글퍼지는 우리의 삶이 그렇다. 사실 그게 우리의 퀴어함이기도 하다. 비극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미덕, 초연함과 불안함이 함께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것이 우리들의 삶의 자세다.  아래의 책 속의 대사처럼. 

 

 “그 이름을 후회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작중 인물들의 즐겁고도 지겨울 게이 라이프가 계속되길 빌며, 간만에 만난 이 반가운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앞으로도 끝없이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창비 사전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