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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절

stri.destride 2019. 7. 8. 14:24

학생운동이 고사해버린 시절에 더 고사해버린것만 같던 운동을 했던 나에게도 지나가는 장면들과 얼굴들이 있다. 그때 어떤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장 최신의 이론을 공부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냐고 물었다. 우리의 학생회 임기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집단성추행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자들도, 능구렁이같이 곤란한 질문에 모른다고 하던 학생처 교직원도, 너희들은  왜이리 맥아리가 없냐며 다그치던 교수님들에게 나는 솔직하고 노련하게 말하지 못했다. 후일 조금 긴 시간이 지난 뒤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다 그곳에 이미 다 써있네 하고 생각했다. 

 

 

 학내에서 회의를 하느라 마주치는 사람들은 매우 소수였고 우리는 사적으로 만날 일이 없었다. 우리는 항상 피곤했고 항상 어떤 공적 구실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었다. 회의는 지난했고 우리는 분노했고 학부를 마치고  난 뒤에도 어떤 사람은 “그래도 당신이 있는 곳의 졸업생들은 다 잘 됐잖아요”라고 묘하게 비꼬듯 얘기했고 나는 속으로 “그러면  너도 그렇게 살면 되지 고시 볼 생각도 없고 취직하려면 한참 먼 나보고 어쩌란거야” 라고 조용히 생각했다.  

 

 

  나도 비장했지만 다른 곳에서 비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도서관 앞을 지나가다가 비장한 그들을 물끄러미 본 기억이 난다. 게이라는  단어를 자주 농담으로 쓰면 게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지 않겠냐는 말에 화를 내지 않게 되던 시절 즈음부터, 내가 석사를 마친  시절에도 학부때와 똑같은 표정과 복장으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을 보면서 모멸감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생각을 하다 곧바로  외면하게 되었고 더이상 한 때의 가치관을 공유했다고 해서 내어주던 곁을 좁혀갔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전에  없던 안정감을 느꼈으며 타인의 말에 감정이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이전보다 덜 흔들리지만 그만큼 고집이 센 사람이 되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멀리하기 시작했다. 연구실에서 호모포비아 농담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정색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본지  한달이 채 되지 않은 신입생은 저 선배는 왜저렇게 오바하나 싶을거다. 

 

 

 머지 않아 나는 학교를 떠나게 될 것이다.  세상이 좁아지면서 넓어진다. 한때의 기억은 긴 시간을 지배했으며 아직까지 풀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으나 언젠가는 풀어낼 수 있을지  이미 말을 해봤자 무용한 것들로 남을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런저런 기억들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를때마다 이것을 허구로  재구성시켜서 완결짓고 보관하고싶다는 충동에 시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