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대학 불교 학과, 정상교 지음, 동아시아

stri.destride 2016. 4. 26. 16:39

그러니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의 '찌라시'를 받아들고도 스님들은 그저 웃음을 머금은 채 합장하며 지나갈 뿐 나같은 깨닫지 못한 속 좁은 중생들만 열받을 뿐이다. 25


'잠들지 못한 자에게 밤은 길고 지친 자에게 길은 멀듯이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의 길은 멀고도 멀어라.' 29


 허전한 마음을 끝내 채우지 못한 우리는 고즈넉한 산사를 찾아 사찰 체험이니 템플스테이니 하는 것을 해본다. 그러고는 '속세를 떠나오니 나를 버리게 되었네, 산이 내게 답을 주었네, 자연으로 돌아가세'같은 범신론적인 자연사랑의 감정을 불태우곤 한다. 42


'그대 중생아, 그대 안에 저렇게 태양처럼 빛나는 보석 같은 여래의 마음이 있다. 그걸 깨달아라.' 이거 아니야? 147


이 우주 끝까지 도망가도 자신이 이룬 업에서 도망치지는 못하리라. 지금부터라도 좋은 업을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 175


따라서 보살이란 몸빼바지 입은 여성 신도가 아니라 대승불교의 아이덴티티 자체이기에, 다른 이의 아픔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대자비와, 집착을 떨쳐내는 공의 이치를 깨달은 밝은 지혜의 두 날개로 대자유를 얻은 이들인 것이다. 그래서 대승의 보살은 수많은 전생에서 수행과 복덕을 통해 다음 생에서는 윤회의 질곡을 끊고 이제는 그 자신 어떤 산란한 미혹함도 끊은 붓다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흙탕 같은 속세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중생을 외면할 수 없어 붓다가 됨을 잠시 미루고 다시 보살로 태어나 다름 아닌 인간 세상에서 중생들과 함께 뒹구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창녀 바수밀다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240


즉 관세음보살의 능력은 고난을 당한 중생의 상황을 그 어떤 곳에서도 자유자재로 관찰하여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관세음 보살'보다는 '관자재보살'이 맞다. 275


"틀리는 건 나쁘지 않습니다. 근거 없음이 나쁜 겁니다. 단어의 정확한 유래도 모르면서 어떻게 문장의 의미까지 말할 수 있습니까? 결국 그건 누군가의 번역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베낀 건데 그런 해석을 바탕으로 사상을 논하는 것은 텍스트의 내용과 상관없는 개인적 감상문일 뿐입니다." 291


이것은 구체적으로 '인간의 근원적 무지를 조건으로 형성됨이 있고, 형성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기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있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음이다'라는 12개 항목을 조건으로 하는 '12지 연기설'이 유명합니다. 293


"뿌리가 강한 나무는 단비에 다시 싹을 틔우듯,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애욕의 뿌리는 스치는 향기에도 다시 싹을 틔움이니 어리석은 자들은 끊어야 할 것은 끊지 않고 신의 이름만 부르고 있느니" 312


진리를 찾는 길은 단순한 지식만의 문제도, 그렇다고 선정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스승들의 가르침 없이 마음만 갈고 닦음은 앞 못보는 말이 목적지 없이 뛰어감에 다름 아니었고, 계율로써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은 지식은 세 치 짧은 혀로 만들어내는 그저 시끄러운 세간의 언어에 머물 뿐이었다.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