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나 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stri.destride 2016. 2. 11. 18:51

젊은, 혹은 젊은 축에 드는 남자 작가가 쓰고 뭔가 - 브랜드와 음악과 만화책과 우상이 매혹적이고 황홀하게 축적된 - 가 잔뜩 들어 있는 소설, 감정은 전부 건너 뛰고 각 문장이 스스로의 멋있음을 멋있게 인지하고 있는 소설이 바로 그가 좋아하는 유였다. 그녀는 단지 그가 추천했다는 이유로 그런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그 책들은 혀의 기억에서 너무 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솜사탕 같았다. 26


미국 생활이 그녀를 돌이킬 수 없게 바꿔 놓았을 거란 암시는 가시처럼 그녀의 살갗에 박혀 계속 자라났다. 부모님도 그녀가 나이지리아에 '적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도 이제는 미국 시민권이 있으니 언제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35


그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한 번도 확신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자기 인생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를. 43


어렸을 때는 부유한 유년기와 외국어 악센트를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들에게도 말로는 표현 않는 갈망,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을 향한 안타까운 희구가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는 자신의 딸이 훌륭한 교육을 받고도 불안감에 얽매인 아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부치가 프랑스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하리라는 것, 그 점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55


그가 운동권이라는 사실에 이페멜루는 놀랐지만 - 그는 학생회 지행부에 있기엔 조금 지나치게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 다른 한 편으로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의 입술은 두껍고 모양이 완벽했으며 아랫입술과 윗입술의 두께가 똑같았다. 지적이면서도 육감적인 입술이었다. 151


그는 나이지리아 정치에 대해, 타지에서 고국의 동향을 좇는 사람답게, 인터넷으로 똑같은 기사를 읽고 또 읽은 사람답게,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쿠디라트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삶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민주화 운동에 자극제가 되겠죠! 난 얼마 전에 이 문제에 관해서 <나이지리언 빌리지> 사이트에 장문의 글도 썼어요." 우주 고모는 그가 얘기하는 동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하는 모든 말에 동의햇다. 그러나 긴 정적이 자꾸 반복되지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줄거리가 빤하고 환한 장면들로 가득한 드라마가 방송 중이었는데 그중 한 장면에서 짧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나왔다.

"나이지리아 여자애라면 절대 저런 치마를 입지 않을 텐데." 바살러뮤가 말했다. "저것 좀 봐요. 아무튼 이 나라에는 도덕적 잣대가 없다니까." 192


그는 나이지리아에 가지 않은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런 온라인 그룹들의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들 사이에서는 사소한 의견도 금방 가열되어 비난으로 돌변하는가 하면 인신공격이 오가는 일도 답나사였다. 이페멜루는 글쓴이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미국의 허름한 집에 살면서, 일만 하며 죽은듯이 사는 나이지리아인들. 그들은 열심히 모은 저금을 간직했다가 12월에 일주일 동안 고향에 돌아갈 때 쓰는데, 그때 신발과 옷과 싸구려 손복시계로 가득한 여행 가방을 몇 개씩 들고 도착하면 친척들의 눈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193


그녀에게는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바로잡는 일을 필생의 사명으로 삼은 사람. 227


"저는 다문화권 이름을 좋아해요. 거기에는 멋지고 풍요로운 문화에서 유래한, 멋진 의미가 담겨 있거든요." 킴벌리는 "문화"가 자신들에겐 낯선, 유색 인종들의 다채로운 보고라고, 반드시 "풍요로운" 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특유의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년느 절대 노르웨이가 "풍요로운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240


이페멜루는 훗날 알게 될 것이다. 킴벌리의 눈에 빈민들은 죄가 없다는 것을. 가난은 빛나는 것이었다. 가난이 빈민들을 성스럽게 만들어 줬기 때문에 그녀는 그들을 사악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성인은 외국인 빈민들이었다. 245


네 살짜리 아이한테 선택이라는 부담을 주는 것, 결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은 어린 시절의 행복을 빼앗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 아이가 더 암울하고 암울한 선택들을 해야만 할 성년기가 이미 성큼 다가와있는 마당에. 275


그들의 자선심에는 그녀가 동조할 수도 없고,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치스러움이 있었다. '자선'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흥청망청 자선을 베푸는 행동은 아마 자신에게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 나온 듯 했다. 278


그녀는 켈시에게서 자기는 틈만 나면 미국을 비판하지만 외국인이 그러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진보 성향 미국인들의 민족주의를 알아챘다. 그들은 외국인 이민자가 군말 없이 고마워하기만 기대했고, 그가 어ㅣㄷ서 왔건 미국이 그의 고국보다 얼마나 더 좋은 곳인가를 늘 상기시키려 했다. 308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일자리를 얻었는지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네가 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국은 사람들이 번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나이지리아는 정말 많이 보고 배워야 돼." 라고 말한 반면, 어머니는 그녀가 몇 년 뒤에 미국 시민권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333